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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나의 순간을 수집하는 박수현의 Names of Beauty


수현 씨는 언제 아름다움을 느끼시나요?

취향이라는 말이 좀 두루뭉술하기는 한데, 사실 이것만큼 사람을 잘 설명해주는 말도 또 없다는 생각을 해요. 일단은 제가 좋아하는 것들이 뭔지 말씀 드려볼게요. 소설 쪽에서 한 명을 꼽으라면 저는 무라카미 하루키를 좋아해요. 문체나 이야기를 끌어가는 방식이 매력적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구체적으로 말씀드리자면 저는 아주 작은 것들, 사소한 것들을 묘사하면서 작품의 주제를 드러내는 방식을 좋아해요. 만약 식사를 하고 있는 장면이라고 하면 그냥 이 식탁 위를 보여주는 거죠. 비어있는 간장종지라거나 짝이 맞지 않는 젓가락 같은 것들. 이걸 대놓고 집중 조명하는 게 아니라 그냥 스쳐가듯 언급만 하는 거예요. 그런 것들이 모여 소설 전체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를 명징하게 드러낼 때, 그럴 때 아름다움을 느끼곤 해요.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라는 거죠.

음악도 그래요. 저는 멜로디보다는 가사에 집중하는 편이거든요. 밴드 넬NELL을 좋아하는데, 가사가 굉장히 담담하면서 마음을 찌르는 뭔가가 있어요. ‘나는 이랬어, 너는 어떠니?’하고 물어오는데 표현이 적나라하달까, 정말 어딘가 실제로 있는 이야기를 노래하는 느낌이거든요.

뭉뚱그려서 추상적으로 이야기하는 것도 물론 의미가 있겠지만 어떤 상황을 특정해서 구체적으로, 사실적으로 이야기할 때 느껴지는 정서도 있는 법이잖아요. 제 취향은 이쪽에 더 가까운 셈이에요. 삶이든 예술이든 작은 것들이 모여 큰 줄기를 이루는 거니까. 사소한 것들도 꼼꼼히 챙긴 작품을 보면 마음이 확 동하는 게 있어요. 제가 느끼는 아름다움의 결도 크게 다르지 않을 거예요.

그 작은 모양들, 파편들을 수현 씨가 느끼는 아름다움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일면이라고 할 수 있겠죠. 그런 순간들이 있잖아요. 살다보면 몰입하는 순간들이 있잖아요. 어떤 것에 확 빠져서 한 대상에만 집중하는 때요. 포괄적으로 말씀 드리자면 무엇에 심취하는 그 순간 자체가 제겐 아름다움이라고도 할 수 있어요. 말씀드린 사소하고 작은 것들이 전체를 이루는 모양도 그 중 하나일 테고요.

제가 몰입하는 것들이 제가 어떤 사람인지 말해준다고 믿어요. 그 심취의 순간이 어쩌면 진짜 저일지도 모르죠. 그럼 거기에 한번 투신해보고 싶은 거예요. 그때의 제가 누구인지 알아보고 싶어요.

정치외교학을 전공했는데요. 제가 특별히 그쪽에 관심이 있어서는 아니었어요. 오히려 무관심한 편이었죠. 그래서 더 그런 공부를 하고 싶었는지도 몰라요. 뉴스나 사건을 다루는 경험들을 하면서 세상에 저를 편입시키고 싶었거든요. 어쨌거나 저라는 사람은 결국 이 세상이라는 조건 안에서만 존재할 수 있는 인간이니까요. 말하자면 세상과의 관계가 저라는 사람이 누구인지 드러내 줄 거라고 믿었던 거죠.

그래서 저라는 사람을 제가 잘 알고 있느냐, 물으면 그건 아직 단정할 수 없어요. 과정인 셈이에요. 막연하게 기나긴 길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은 해요. 그래도 계속 가야하는 길이죠. 앞으로 무슨 일을 할지 모르지만, 궁극적으로는 저를 심취하게 만드는 순간들을 찬찬히 바라보면서 저에게로 한 발짝 씩 걸어 나가 보려고 해요.

앞으로는 어떤 일을 하고 싶으신가요?

저만의 뭔가를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서도 제가 어떤 사람인지 아는 게 너무나도 중요한 거예요. 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도 이야기할 수 있어요. 허황된 말처럼 들리기도 하죠. 나만의 무언가라는 게 아예 없을 수도 있으니까요. 죽을 때까지 그걸 발견이나 할 수 있을까, 발견한다 해도 그것으로 오롯하게 내 일을 할 수 있을까. 어려운 일일지도 몰라요.

취향을 찾고 아름다움을 느껴가면서 나라는 사람의 윤곽을 잡아나가는 일은, 그래서 더 과정 그 자체의 의미가 중요하다고 믿어요. 가끔은 이 과정을 즐기기 위해 살아나가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해요. 이 모든 과정이 끝났을 때, 결국 제가 누군지 알아내지 못했다고 할 지라도요. 그냥 이 순간. 나를 심취하게 만드는 것들에 심취하는 이 순간들을 즐겨보는 거죠.

<인간극장> 좋아하거든요. 시간 날 때마다 챙겨 봐요. 보면서 세상엔 정말 별의 별 사람들이 많구나, 생각하죠. 사업에 실패해서 무인도로 들어가 사시는 분도 계시고, 며칠 동안이나 쉬지 않고 마라톤을 달리는 분도 계세요.

그걸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해요. 만약 내가 <인간극장>에 나온다면 어떨까. 나를 어떤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뭔가 제 몫의 일을 하는 사람이 되면 좋겠어요. 그게 무슨 일인지 알아내기 위해 이 길을 걷는 거예요. 계속 걸어 나가는 거죠.

그 걸음을 응원하고 싶은 건, 아마 비슷한 처지라서 일까요. 마지막 질문을 드리며 대화를 마무리하겠습니다. 딱 여기까지, 지금 이 순간까지의 유언이라고 하면, 마지막으로 어떤 말을 남기고 싶으신가요?

좀 뻔할 수도 있는데, ‘감사합니다’랑 ‘모두 행복하세요’ 라는 말을 하고 싶어요. 모든 사람들에게. 지금까지 제 말을 들어줬다는 게 고맙고 정말이지 모두가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각자 좋아하는 것들에 더 심취하기를 바라요. 행복이란, 역시 좋아하는 것들에 몰입하는 순간일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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