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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미주의자 김현경의 Names of Beauty


현경 씨는 아름다움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시나요?

평소에도 아름다움에 관심이 많아요. 예전부터 제 정체성을 설명하는 단어 중 하나로 ‘탐미주의자’를 꼽을 정도로요. 대학에 처음 입학했을 때도 미학과에 진학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복수전공으로 미학 개론 수업을 들어보기도 했거든요. 생각보다 너무 어려워서 이런 건 내가 하는 게 아니다 싶긴 했지만요. (웃음) 그 정도로 아름다움에 대해선 관심이 많아요.

화가 많은 편이 아니라 웬만한 것들은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넘기는 성격인데요. 유독 아름답지 못한 것을 보면 거슬리는 게 있어요. 이상할 정도로. 보통 기분 나쁜 일이 있으면 피해버리고 마는 편인데 이 부분에 대해서만큼은 좀 민감하달 까요.

예를 들어 말씀을 드리자면, 몇 년 전에 제가 다니는 교회 앞에 크리스마스트리를 해놓았어요. 대형 교회다 보니까 트리도 꽤 크게 세워놓았는데 그게 너무 못생겨서 볼 때마다 화가 나는 거예요. 돈이 없는 교회도 아니고 웬만해서 트리가 이상하기는 힘들잖아요. 그냥 전등만 둘러놔도 예쁜 건데.

사실 그게 별일도 아니고 그냥 지나치면 그만일 텐데도 그 앞을 지나갈 때마다 왜 저렇게 해놓았나 계속 속이 상했어요. 이게 한 번 해놓은 걸 몇 년 동안 그대로 쓰는 바람에 나중엔 교회를 옮길까, 하는 생각까지 하고. (웃음) 그렇다고 이런 일로 항의를 한다거나 그럴 수도 없는 거잖아요. 친구들에게 물어봐도 다들 그다지 신경 쓰는 것 같지 않았고요. 지난 시즌에야 트리가 바뀌어서 다행이다 속으로 환호했는데, 말하자면 이런 식으로 아름다움에 대해서는 스스로를 조금 민감한 편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현경 씨의 화를 돋우는 건 아닌지 걱정 되는데요. (웃음) 그럼 현경 씨께서 생각하시는 아름다움의 조건은 무엇인가요?

사실 여기 오기 전에 지난 인터뷰들을 전부 읽어 보고 왔어요. 제가 워낙 느낌을 그냥 느낀 대로 받아들이기보단 분석하는 성격이거든요. 그래서 남들의 아름다움에 대한 의견을 나름 분류를 해봤어요. 메타 분석 쫙. (웃음) 보니까 흔하게 말씀하시는 것들이 자연, 인간, 사랑 같은 것들이더라고요. 저는 인간이나 사랑에 특별히 매력을 느끼는 편은 아니고, 일단 아름다움은 우리에게 주어진 자연 속에서 발견하는 것이지 않나 싶었어요.

자연의 아름다움은 인간이 도저히 재현할 수 없는 것이고, 제가 책을 쓰면서도 늘 강조하는 부분인데 저는 타고난 다양성을 존중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믿거든요. 그런 면에서 자연이야말로 어떤 보고寶庫라고 할 수 있잖아요. 인간의 문제는 대개 자연의 다양성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상상력의 한계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해요. 차별이라든지 다름에 대한 배제 같은 것들이요.

일단 처음에는 그렇게 자연 그 자체가 아름다움이지 않겠냐 싶었는데 이건 좀 너무 보편적인 것 같고. 제가 좋아하는 것들 위주로 다시 생각을 해봤어요. 다른 사람들이 주목하지 않는 것들 중에 제가 선호하는 것들이요.

그래서 떠올린 것이 보석과 아이돌인데요. 둘 다 제가 유난히 좋아하는 분야이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아름다움에 대해 이야기할 때 잘 거론되지 않는 주제인 것 같거든요. 제 생각엔 이 둘이 꽤 비슷한데 그 공통점이 어쩌면 제가 생각하는 아름다움의 원소가 아닐까 싶어요. 사실 보석이나 아이돌을 아름다움의 예로 들기에는 좀 천박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기도 해요. 그런데 제게는 그들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어떤 지점이 있거든요.

일단 보석부터 말씀을 드리자면 어릴 적부터 정말 좋아했어요. 어릴 때는 특히 광물 원석에 관심이 많았어요. 백과사전의 ‘광물’ 섹션에 원석 화보가 들어 있거든요. 그것들을 몇 번이나 되풀이해서 보았던 기억이 나요. 너무 신비롭고 아름다워서요. 광물 이름 다 외우고, 표본 전시회 같은 데도 찾아다니고요.

원석도 예쁘지만 세공을 거친 보석들도 사족을 못 쓸 정도로 좋아해요. 지금도 제가 SNS 팔로우를 해놓은 걸 보면 친구들 이외에는 거의 보석 세공하시는 분들 계정일 정도로. 박물관에 가도 왕이나 귀족이 했던 관, 목걸이 같은 것들 앞에서 떠나질 못해요.

그렇지만 제가 아름다움에 대해 이야기하며 보석을 말씀드리는 이유는 단순히 그게 보기에 좋아서만은 아니에요. 보석의 목적이라는 건 일단 몸을 치장하는 데 있는 것이잖아요. 이건 조소와 같은 순수 예술과는 다르게 실용적인 면이 크죠. 단순히 조형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기에 앞서 기능성도 고려해야 하고 이걸 패용하는 사람의 수요를 충족시켜주기도 해야 하는 거니까요.

때문에 보석에는 자연히 인간의 욕심이 담기게 된다고 믿어요. 허영심이랄지, 사치랄지. 뿐만 아니라 그로 인한 세공사의 갈등도 들어 있죠. 만드는 이가 구현하고 싶은 형태와 착용할 이의 취향이 다를 수도 있고, 어쩌면 원석 자체의 한계 때문에 원하는 정도를 달성하지 못할 수도 있으니까요.

광물이라는 자연의 산물을 가지고 인간이 어떻게든 자신만의 아름다움을 구현해내려고 절충한 결과가 바로 보석이라고 생각해요. 보석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수요자의 취향과 디자이너의 개성, 주어진 재료와 발상 사이에서의 치열한 싸움이 보여요. 그 투쟁의 결과가 보석인 것이고 이것이 한계를 딛고 나름의 모양을 갖췄다는 사실이 감동으로 다가오는 거죠.

거칠게 말해서 보석을 자연과 인간의 싸움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광물이라는 자연물을 재료로 인간이 나름의 기술과 상상력을 담아 아름다움을 실현하려는 노력이잖아요. 물론 자연의 아름다움을 인간이 그대로 재현할 수는 없겠지만, 그 한계 안에서 아등바등 노력하는 모습 자체와 나름의 성과에서 오는 짜릿함이 있어요.

보석이라고 하면 단지 화려하게 반짝이는 모습만 생각하기 마련인데, 말씀을 들어보니 아주 새로운데요. 그럼 아이돌은 어떤 점에서 아름다움을 느끼시나요?

아이돌도 보석과 비슷해요. 아이돌이야말로 사실 하나의 상품이거든요. 일단 팔리는 게 중요하죠. 유행을 만들어야 하고 소비자들에게 매력을 호소해야 하고요. 그게 약간 진부하더라도 사람들이 원하는 이미지를 보여줘야 하는 거잖아요.

아이돌을 원하는 팬들도, 아이돌이 되고 싶은 지망생들도, 아이돌을 만들어내는 프로듀서들도 마찬가지예요. 새로운 시도를 해볼 수는 있지만 어느 정도는 이미 틀이 있어서 그 밖으로는 넘어가기 힘들어요. 안전하게 팔리는 상품이 일단 필요하니까요. 그러다 보니 아이돌 하면 다 비슷비슷하게 볼 수도 있는데요.

그런데 여기서 재밌는 것은 아이돌이 되려는 사람들 중 일부는 자신만의 뭔가를 해보고 싶은데 일단 통로가 마땅치 않으니까 아이돌의 틀을 가져가는 경우가 있다는 거예요. 제작자들도 그래요. 개중의 일부는 이미 시장에 나온 뻔한 상품보다는 자신만의 작품으로 예술적인 성취를 달성하려는 마음을 갖는다는 거죠.

자세히 보면 그런 게 보여요. 아, 저 친구는 정말 색깔 있고 독특하다. 이 팀은 뭔가 다르다. 아이돌이라는 틀에 묶여있기는 하지만 단순히 소비재가 아닌 아티스트로서의 가능성도 있구나 싶죠. 그러다 어느 한 순간엔 그가 가지고 있는 재능이 확 폭발하는 때가 있어요. 마치 원석이 모양을 갖추듯 고유한 재능이 반짝이는 순간이 오는 거죠. 그 모습에서 짜릿함을 느껴요. 그건 잘 만들어진 보석을 볼 때의 감동과도 다르지 않아요. 그걸 발견하는 재미에서 아이돌을 좋아하게 되는 거고요.

아이돌이 아티스트로서 자기의 욕구와 대중의 바람에 맞춘 이미지 사이에서 절충하고 고민하는 과정은 사실 원석을 다듬는 세공사의 작업과도 비슷할 거라고 생각해요. 제가 아름다움을 느끼는 지점도 바로 거기예요. 자연스럽게 주어진 날 것의 재료로 뭔가를 구현해보고자 고투하는 인간의 가상함이요. 그리고 그 노력이 하나의 눈부신 결과물을 내놓을 때의 폭발적인 짜릿함, 이것을 아름다움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죠.

상반되는 것들 사이에서의 고민과 절충을 말씀해주셨는데, 이런 태도는 현경 씨의 작품 속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어느 별에서 왔니>와 신작 <그래, 이혼하자>를 읽었는데, 두 권의 소설 모두 다양하고 다른 것들 사이에서 그래도 잘 어울려 살아가기 위한 나름의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작품을 쓰면서 항상 고민하는 점이 바로 그런 거예요. 우리가 모두 같지 않고 서로 어쩔 수 없이 상충하는 면이 있다는 걸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우러짐을 위해 노력해보자는 거죠. <어느 별에서 왔니>는 사람의 성격을 아홉 개의 유형으로 나눠서 설명하는 에니어그램을 소재로 했어요. 우리가 같은 사람의 탈을 쓰고 있지만 서로 다 다르고 결코 이해나 타협하지 못할 부분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우리에게 불행 같기도 하지만 결국 얼마나 다행인지를 이야기하고 싶었던 거예요.

<그래, 이혼하자> 같은 경우는 일단 결혼이라는 제도 자체의 모순을 꼬집고 싶었어요. 평소 결혼제도에 대해 관심이 많거든요. 과연 일부일처제가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것처럼 보편적이고 상식적이기만 한 제도일까. 실제로 실패하는 사람도 많고 불합리한 점도 많잖아요. 물론 결혼제도는 나름의 보편성과 가치가 있고 잘 맞는 사람들도 있다고 봐요. 그러나 그걸 일원화해서 모두에게 강요하는 순간 폭력이 된다고 생각해요. 때문에 스스로 비혼주의자를 자칭하기도 하고요.

책 제목에 이혼이라는 단어가 들어가서 좀 거부감을 느끼실 수도 있는데, 사실 이제는 이혼이 우리 사회에서 그렇게 쉬쉬할 이야기가 아니라고 보거든요. 일부일처제가 낭만적이기는 하나 실제로 참 어렵고 복잡하다는 걸 인정하면 그때부터는 얼마든지 새로운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이혼에 대한 시선이 너그러워지면 그 선에서 이탈하는 사람들도 더 자연스럽게 포용할 수 있을 테죠.

물론 이혼이 개인적으로 큰 비극이라는 사실까지 변하지는 않을 거예요. 영원히 함께 할 줄 알았던 사람과의 이별이 어떻게 축제가 되겠어요. 그러나 그것마저도 삶의 한 형태로 받아들일 때 진짜 사랑하는 사람과 살아갈 바닥을 다질 수 있겠다고 생각해요. 작품 쓰면서 좁게는 결혼제도 넓게는 가족제도 자체를 다시 점검해보자는 마음이었어요.

결국 이 소설은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끼리 어떻게 하면 잘 살 수 있겠느냐 하는 고민 끝에 내놓은 나름의 해답인 셈이에요. 어쨌든 우린 좋든 싫든 지구별에서 태어난 이상 함께 살아가야 할 사이인 거니까. 서로의 간격을 잘 조율하고 절충하려고 노력하는 태도가 필요하고 또 그 요령들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해보고 싶었어요.

<어느 별에서 왔니>의 마지막 문장이 떠오르는데요. ‘이 지구가 아름다운 건, 이곳에서 살고 있는 수많은 외계인들 때문이라고.’ 다양하다는 말은 곧 다르다는 뜻일 테니까, 산다는 건 어쩌면 그 수많은 다름을 인정하는 일이라는 생각도 들고요.

그렇죠. 힘든 일이겠지만 계속해야 하는 일인 거죠. 그런 노력 속에서 어떤 성취나 빛나는 달성을 발견하면 그것만큼 아름다운 게 없어요. 시각적인 자극에 예민한 편이라 미술이나 패션에도 관심이 많은데요. 그냥 봐서 예쁜 건 한순간이지 계속해서 끌리지가 않아요. 그 이면에 의지나 고민이 담겨 있어야 계속 두고 바라보게 되더라고요.

아이돌이나 보석을 이야기하면 그게 무슨 아름다움이냐 반문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어요. 뭐 그거 다 똑같은 거 아니냐고. 그런데 그들의 노력이나 나름의 투쟁을 들여다보면 그건 또 다른 세계거든요. 수많은 갈등을 봉합하고 하나의 완성된 모양이 되는 모습을 바라볼 때의 짜릿함. 보석이든 아이돌이든 이것 때문에 계속 관심을 가지고 파게 되는 거예요.

이건 좀 다른 얘긴데, 현경 씨 SNS를 보면 해골 아이템을 좋아하시는 것 같더라고요. 왜 하필 해골을 좋아하실까 꼭 여쭙고 싶었어요. (웃음)

주변에서도 가끔 물어보는데요. 처음엔 그냥 해골 모양이 좋았던 건데 나중에는 하도 그런 질문을 받다 보니 한번 찾아보게 되더라고요. 해골 모양이 뭘 뜻하는지. 몇 가지가 있는데 해골은 일단 죽음을 의미하죠. 저는 죽음에 관심이 많아요. 죽음을 직시할 때만 삶의 진정한 의미를 발견할 수 있으니까요.

멕시코에는 매년 11월에 ‘죽음의 날’이라는 게 있대요. 사람들이 해골 분장을 하고 돌아다니면서 축제를 즐기는 건데요. 메멘토 모리 Memento mori, 늘 죽음을 기억하라는 거죠. 멕시코가 근현대사의 굴곡도 많고 지금도 어려움이 많은 나라잖아요. 죽음을 받아들이고 이렇게라도 즐기지 않으면 현실을 헤쳐 나가기 힘들었던 거죠.

또 해골은 아웃사이더의 상징이기도 하고, 인간의 평등함을 상징하기도 한대요. 우리가 다 다르게 생기고 각자 스타일대로 치장하고 살고 있지만 결국 해골이 된 인간은 다 똑같잖아요. 그런 의미들도 좋았어요. 물론 처음부터 알고 좋아한 건 아닌데, 아마 그런 상징들에 무의식적으로 끌렸던 게 아닐까 싶어요.

그래서 해골 모양 아이템을 모으고 있는데, 은근 귀여워요. 이렇게 완전히 벌거벗은 아이들이 우리 일상에 들어와서 ‘나를 항상 생각해줘’ 하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거든요. 그러고 보면 일상과 죽음이라는 단어도 간격이 큰데 그게 어우러지는 모습에 끌리는 거죠. 저라는 사람이 애초 그렇게 상반되는 것들, 이질적인 것들의 공존에 끌리는 편인지도 모르죠.

네, 감사합니다. 마침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서 한 가지 질문을 더 드리고 대화를 마칠까 하는데요. 만약 죽음이 요 앞에 와있어서, 지금 당장 한 마디 말밖에는 남길 수 없다면 어떤 말씀을 하고 싶으신가요?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어요. 제가 누리고 있는 모든 것들이 사실 제게는 과분하다는 생각을 늘 해요. 우연히 태어났을 뿐인데, 제가 그걸 누릴만한 가치가 있는 존재인지 모르겠어요. 어쨌든 세상엔 아름다운 존재가 많잖아요. 보석과 아이돌과 (웃음) 그 모든 것들에게, 그냥 고맙다고 말하고 싶어요.

* 소설가 김현경의 인스타그램 아이디는 hanggang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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