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난시가 있는 윤동원의 Names of Beauty


동원 씨는 아름다움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계신 가요?

아무래도 평소에 생각하는 것들이 아니다 보니 시간을 두고 고민을 좀 해야 했어요. 뭐랄까 아름다움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겠다는 뜻 없는 용기가 생겼달까요. 일단 아름다움이라는 단어를 떠올렸을 때 가장 처음 다가온 이미지는 여자 친구의 얼굴이었어요. 여자 친구가 나를 바라봐줄 때의 그 눈빛 같은 것들이요.

여자 친구가 나를 바라봐주고 내가 여자 친구를 바라볼 때의 시선, 어쩌면 아름다움이라고 하는 건 이 시선과 관련된 무엇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말하자면 아름다움이란 누군가의 시선을 잡아끄는 무엇인 동시에 그 무엇을 진득하게 바라보는 시선 자체가 아닐까 하는 고민을 해보게 된 거예요.

일단 그런 생각을 하고 나니까 다른 쪽으로는 의견 전개가 안 되더라고요. 누군가 자기 일에 열중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눈빛이 살아 있잖아요. 어쨌든 눈빛이 살아있는 사람을 보면 훨씬 생생한 느낌이 들죠. 그런 모습에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면, 결국 아름다움이란 건 눈빛 또는 시선과 관련된 무엇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인 거예요.

이를테면 오래 바라보게 만드는 것. 볼 게 너무 많은 세상이잖아요. 봐야할 것도 많고. 그런데 살다보면 유난히 시선을 떼기 어렵게 만드는 순간이나 장면들이 있어요. 아름다움이라는 건 거칠게 말해서 결국 그런 게 아닐까 싶어요. 그윽한 시선을 뽑아내는 것들. 우리를 잡아끄는 것들이요.

시선을 잡아끄는 것들은 분명 그렇지 않은 것들과 다른 점이 있을 것이고, 그것이 바로 아름다움이라는 말씀이신가요?

그렇죠. 시선을 한쪽으로 쏠리게 만드는 것도 그렇고, 나아가서 두 개체가 서로 주고받는 눈빛도 아름답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사람은 눈으로도 말하잖아요. 말하지 않아도 눈빛에 언어를 담을 수 있죠. 그러니까 바라본다는 건 단순히 동공을 지향하는 행위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고 믿어요. 종합적인 것이죠. 시선을 받고 있는 대상과 시선을 주는 행위 사이엔 분명 어떤 작용이 있을 거예요. 그것이 아름다움을 구축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인 거죠.

듣는 것과 보는 건 확실히 다르잖아요. 어떤 점에서 다르냐면, 물론 여러 가지 측면에서 다르겠지만 일단 눈은 보기 싫은 건 감아버릴 수 있어요. 귀는 그렇지 않죠. 귀를 막아도 새어 들어오는 소리가 있는 법이니까. 그렇지만 눈은 별다른 수고 없이 그냥 정보를 차단할 수 있어요. 결국 무엇에 시선을 둔다는 건 온전히 우리의 선택에 기반 하는 것이거든요.

맘에 안 들면 보지 않으면 그만이죠. 그렇다고 할 때, 우리가 굳이 시간을 들여서 오래 눈을 맞추는 것들은 뭔가 다른 점이 있다고 할 수 있다는 의견이죠. 저는 그것이 바로 아름다움이라고 생각을 해보는 거고요.

그럼 최근에 동원 씨가 시선을 두고 바라본 대상은 무엇인가요?

여자 친구죠.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이고. 가장 내밀하고 은밀한 모습을 보여주는 사람이니까요. 사랑을 할 때, 말하자면 둘만이 할 수 있는 대화를 할 때의 얼굴이나 몸, 저에게 주는 눈빛과 제가 그녀를 바라볼 때의 눈빛. 그런 게 다 아름다워요. 계속 보고 싶은 순간들이죠.

좀 다른 이야기이기는 한데, 요새는 세상에 낭만이 좀 결여된 것 같아요. 사람들이 진지해지기를 싫어한다는 느낌을 종종 받아요. 오글거린다느니 하는 말을 많이 하잖아요. 물론 낭만이 취향이 아닌 사람도 있겠지만, 그런 말들이 어떤 식으로든 사고를 제한하는 면은 분명히 있다고 생각해요.

자신의 일에 몰입하고,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오래도록 바라보고, 삶이라는 것에 대해 좀 더 시간을 두고 응시해야할 때가 있으리라고 믿거든요. 그런데 그런 이야기를 하면 부담스러워 하거나 너무 진지하다느니 하는 식으로 깎아내려요. 그런 게 쌓이다보면 아예 인스턴트로 사는 거예요. 깊이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깊어질 수 있겠어요.

물론 저도 그런 말들에 어딘가 좀 훼손되기도 했겠죠. 말을 하면서도 계속 자기 검열을 하게 되거든요. 아, 이런 말을 하면 상대방이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그런데 우리는 지금 아름다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으니까 어쩔 수 없이 조금은 진지해질 수밖에는 없는 거잖아요.

뭐 이런 식으로 스스로를 설득하고 이야기를 계속하자면, 제게는 여자 친구가 정말 아름다워요. 나를 어루만져주고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하는 그 모든 순간이 눈부시고 황홀하거든요. 세상에 다른 재밌고 화려한 게 많지만 여자 친구만큼 제 시선을 끄는 건 없어요.

진지함에 대해 해주신 말씀은 특히 공감이 되네요. 어쨌든 지금 이 시간, 우리가 아름다움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순간만큼은 그런 고민 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음, 말씀을 듣다보니 이런 게 궁금해졌어요. 우리가 시선을 두는 그 시간은 결국 지나가버리는 거잖아요. 동원 씨는 그 아름다움을 잡아두기 위해, 혹은 보존하기 위해 노력 하시고 계신지요.

사진을 찍고 있어요. 아주 오래된 취미거든요. 어쩌면 사진이야말로 바라보는 행위 그 자체잖아요. 아마 사진을 찍으면서 지금의 의견을 정리했다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는 주로 문을 찍었거든요. 대문 같은 거요. 지나가다 문득 문에 시선이 가면 그걸 찍어두는 거예요. 대문을 보면 그 집의 성격을 대충 알 수 있어요. 주인의 손때라든지 세월이라든지 그런 것들이 묻어있으니까요.

그런 데에 제가 좀 끌리는 건지, 오래 자기 일을 하는 사람들을 좋아하는 편이에요. 뭐, 대문도 그렇다고 할 수 있겠죠. 제가 바버샵 오픈을 준비하고 있는데, 이 일이 참 좋거든요. 그렇게 자기 자리에서 오래 자신의 일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기도 하고요.

door, 109 / 2012

일에 대해 더 이야기를 해주실 수 있으실까요?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일, 혹은 개개인이 원하는 아름다움을 극대화시키고 실현시키는 일이라고 할 수 있죠. 사람과 사람이 처음 만나 마주 보면서 시선은 상대의 얼굴에 먼저 머물죠. 그 얼굴을 좀 더 돋보일 수 있게, 각자의 스타일과 개성을 대변할 수 있도록 돕는 게 제가 하는 일이에요.

일이란 게 금전적인 면도 무시할 수 없지만 그보다 제가 현재 하고 있는 이 일에 집중하고 싶어요. 큰돈이 따라오지 않아도 괜찮아요. 저만의 공간을 길게 유지하면서 오래도록 눈길이 가는 바버샵을 만들어 보는 것. 그런 식으로 제가 추구하는 아름다움을 지켜나갈 수 있다면 바랄 나위가 없겠죠.

제가 추구하는 아름다움을 많은 사람들에게 소개하고 싶은 욕심도 있어요. TV 속에 나오는 아이돌처럼 쉴 새 없이 변하는 유행을 좇는 스타일보다 5년 전, 5년 후, 10년 후에도 제가 추구하는 이 아름다움을 갈고 닦아 더 숙련도 높게 사람들에게 제시하고 싶은 욕심이 있죠. 물론 저의 욕심이라는 것일 뿐 유행을 좇는 것에 대해 비하하거나 무시하는 발언은 아니에요. 그 조차도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하나의 또 다른 방법이니까요.

늘 그 자리에 있는 사람. 여기저기 옮겨 다니지 않고 머물러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나무뿌리 같은 사람이랄까요. 대문 같기도 하고 뿌리 같기도 한 사람, 오래 두고 보고 지켜보면서 같이 낡아가는 이발사가 되고 싶어요.

네, 감사합니다. 대화를 마치면서 한 가지를 더 여쭤보고 싶어요. 지금 이 대화는 기록으로 남는 대화니까, 휘발되는 말들을 제외하면 동원 씨의 마지막 ‘남는’ 말들이 되는 셈이잖아요. 지금껏 해오신 모든 말들을 어떻게 마무리하고 싶으신가요.

마지막이라고 하니 뭔가 멋있는 말을 해야 할 것 같기는 한데요. 문득 퇴계 이황 선생께서 돌아가시기 직전에 하셨다는 말이 떠오르네요. 그분이 생전에 분재에 취미를 두셨다고 해요. 그래서 ‘저 매화에 물을 주어라’는 말을 남기셨다고 하는데, 제가 할 말은 아닌 것 같고. (웃음)

글쎄요. 뭔가 말하기보다는 아예 눈빛에 남겨두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어요. 하고 싶은 말을 다 입 밖으로 표현할 수도 없는 거니까요. 차라리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이나 뭔가 다른 대상을 지긋이 바라보게 되지 않을까 싶어요. 만약 뭔가 말해야 한다면 영화 <아바타>처럼 할까요. ‘I see you’ 라고요.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