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하나 우보라의 Names of Beauty

December 30, 2016

 

보라 씨께서 아름답다고 생각하시는 것들은 어떤 공통점을 가지고 있나요?

  

질문을 듣자마자 떠오른 건 다름 아닌 시간이었어요. 제가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것들은 대체로 시간에 종속 되어있는, 말하자면 시간 안에서 의미를 가지는 것들이거든요. 여행하는 걸 좋아하는 편인데요. 여행을 가도 그렇잖아요. 예를 들어 어떤 여행이 3박 4일짜리다, 그러면 그 여행은 좋든 싫든 세 번의 밤이 지나면 끝나는 거죠.

  

그 한정된 시간, 말하자면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더 구체적으로 느껴지는 시간 속에서 다양한 것들을 체험하고 약속하는 게 여행이니까요. 그 시간 속에서 온갖 아름다움을 느끼고 또 여행이 끝난 뒤 지나온 시간들을 돌아보면서 다시금 아름다움을 재확인하기도 하고. 이 모든 과정이 삶의 활력소가 돼요. 이것은 온전히 시간 속에서만 가능한 일이라는 생각도 들고요.

  

반면에 살면서 안 좋은 일들을 마주하기도 하는데, 그런 것들도 시간이 지나면 다 미화가 되잖아요. 말 그대로 미화美化되는 거예요. 모난 부분이 시간이 깎여서 이제는 살짝 쓰다듬을 만 해지는 거죠. 그건 시간이 하는 거잖아요. 시간이 모든 걸 위로하고 또 잊게도 하고.

  

아름다움이란 결국 여행과 같이 ‘한정된’ 시간 속에서만 있는 무엇일까요? 만약 우리에게 무한한 시간이 있다면 그 속에서 느끼는 아름다움이 조금 덜해지지는 않을까요.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아요. 우리가 임의로 시간을 과거, 현재, 미래하는 식으로 나눠서 생각하고는 있지만 사실 시간은 그렇게 딱 잘라 구분할 수 없는 것이잖아요. 그건 강물처럼 흐르는 무엇이죠. 매순간 어디에나 시간은 있고, 흐르고 있어요. 전 그런 시간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요. 말하자면 시간이 흐르는 한 그곳에는 언제나 아름다움이 존재한다고 믿어요.

  

우리가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으면서 아름다움을 느끼는 이유는 그것들이 우리를 다른 시간 속으로 데려다 주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책을 펼치는 순간부터 우리는 아예 다른 시간에 존재하는 거예요. 지나온 날을 회상할 때도 그렇죠. 우리는 시간이 흐르는 방법을 관찰하면서 그 물결 위에 몸을 맡겨보는 거예요. 그게 우리를 여기까지 데려다 줬고, 또 다른 어디로 흘려보내겠죠.

  

미술작품을 감상할 때 물론 명암이나 구도를 보고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어요. 하지만 저는 작품에 묻어있는 작가의 시간이 우리를 감동하게 한다고 생각해요. 이걸 구상하고 고민하고 색을 바르고 털어낸 모든 시간이 작품에 그려져 있는 거죠. 시간 없이는 작품도, 아름다움도 없어요.

  

그럼 최근에는 언제 아름다움을 느끼셨나요? 구체적인 상황을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이 질문을 받게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대답은 당연히 남자친구와 함께 있을 때(웃음), 그 때가 가장 아름답죠. 특히 남자친구가 고백했던 순간. 아마도 시간과 함께 미화된 것일 텐데(웃음), 넘나 미화된 것. 뭐 그런 거죠. 그 사람과 있을 때는 사소한 일도, 기분 나쁜 일도 다 아름다워요.

 

미화 말씀을 하셔서요. 어쩌면 시간의 힘이라는 건 그런 게 아닐까 싶어요. 시간은 죽을 것 같이 힘들었던 순간마저도 슬그머니 별 거 아닌 것으로 만들어 버리잖아요.

 

정말 그래요. 제가 지금 신문사에서 사회부 기자로 일하고 있는데, 아침마다 ‘사스마와리’라고 해서 지역 관할 경찰서를 돌면서 기사를 써요.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서 여기저기 기사를 찾아다니는 거예요. 이걸 매일 하다 보면 체력 소모가 굉장히 심하거든요. 살이 일주일에 삼 킬로 씩 쭉쭉 빠지고 스트레스도 많이 받고요.

 

주위 분들은 지금 힘든 만큼 다른 데 가면 좀 편해질 거야, 뭐 이런 식으로 위로를 해주세요. 물론 그렇겠죠. 이렇게 경력을 쌓고 다른 부서로 가면 아무래도 육체적인 부담이 적어지기는 할 거예요. 그런데 전 사실 이 사스마와리가 제 기자 인생 꽃 중의 꽃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전 지금 제 기자 생활 가장 아름다운 시기를 지나고 있다고 믿어요.

 

이 일이 아무리 힘들더라도 결국엔 다 추억이 될 거라는 걸 알고 있어요. 모든 힘들었던 순간이 그랬던 것처럼. 그러니까 지금 열심히 해야죠. 이 순간은 지나고 나면 끝이잖아요.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지금밖에는 못하는 일이 되어 버릴 거예요. 올해로 입사한지가 6, 7년이 되어 가기도 해서 슬슬 할 만하기도 해요. 나중에 후회하기도 싫고요. 지금이 좋아요.

 

위로가 되는데요. 가끔은 무한한 시간 속에서 그냥 숨어버리고 싶은 때가 있잖아요. 당장 버티기 힘든 순간이 오면 시간이라는 이불 속에 몸을 좀 숨기는 거예요. 그럼 시간이 저를 괜찮은 곳으로 데려다 줄 거라고 믿어보기도 하고요.

 

그런 경험이 있어요. 한 때 방콕이라는 도시에 빠져 지냈던 적이 있거든요. 여행을 갔다가 돌아왔는데도 언제 다시 나가지 하면서 계속 떠날 궁리만 하는 거예요. 어떻게 하면 이 일상으로부터 벗어나서 방콕에 닿을 수 있을까. 그러다 보니 여행이 끝나도 저는 계속 방콕에 머물러 있는 거죠. 일상에 집중하지 못하면서 방콕에서 쓸 돈을 모으고. 생활에 충실하지 못한 채로요. 살 붙이고 사는 이 도시가 아니라 저기 저 방콕이 제 삶의 중심이었던 셈이에요.

 

그런데 제가 직장생활 하면서 쓸 수 있는 휴가가 얼마나 되겠어요. 길어야 일 년에 이, 삼십일 밖에는 안 되는 거잖아요. 그건 얼마나 적은 시간이에요. 일 년에 겨우 30일 제정신으로 살기 위해서 남은 340일 정도를 희생하는 꼴인데. 어느 날 그걸 깨달으면서 생각이 확 바뀐 거예요.

 

여기에서의 삶에 의미를 두지 않는다면 과연 어디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거든요. 지금을 소중하게 생각해야겠다. 기사를 바쁘게 쓰더라도 커피 한잔 마실 시간 정도는 내야겠다. 그렇지 않으면 일상이 너무 불쌍해져 버리니까요.

 

여행을 위해서 지금을 낭비해서는 안 되겠다는 다짐을 했어요. 아름다운 건 매 순간 있는 것인데, 당장 내 앞에 있는 아름다움도 느끼지 못하면서 무슨 아름다움을 또 찾겠어요. 그런 생각을 하고 난 다음부턴 여기 마산에서의 생활에 더 만족하기도 하고 하루하루 살아갈 힘을 더 내게 되는 것 같아요. 결국 가장 중요한 시간은 내가 사는 지금 이 시간이니까요. 그렇게 매 순간을 충분히 살다보면 어느새 좋은 사람도 되어있고 그런 게 아닐까 싶어요.

 

그걸 잘 해내기 위한 보라 씨의 방법이 따로 있나요? 현재를 잘 붙잡아 두고 매진하기 위한 노하우랄까요.

 

물론 우리가 사람이니까 매순간 모든 걸 바쳐서 집중할 수는 없잖아요.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조금은 잉여가 될 필요도 있다고 생각해요. 이를테면 제가 하루 종일 침대 위에서 하루를 보냈다고 해봐요.

 

다른 사람들은 이걸 낭비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죠.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볼 수도 있고요. 그런데 우리에게는 그런 시간이 꼭 필요하거든요. 일주일 내내 달려온 사람에게 그 하루 정도의 휴식은 없어서는 안 되는 거니까.

 

말하자면 시간에 대한 관점은 상대적일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어떤 시간을 알차게 쓰느냐 그렇지 않느냐는 결국 마음가짐의 문제일 수도 있어요. 무의미 하거나 쓸모 있는 시간이란 건 없고 단지 그것을 어떻게 바라보느냐 하는 문제가 남는 거죠.

 

최근에 하루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창원에 있는 출입처에 들렸다 진해로 가서, 진해에서 마산으로 들어온 다음 다시 창원을 찍고 마산으로 돌아온 날이 있어요. 남들이 볼 때는 시간을 굉장히 촘촘히 썼다고 생각할지 몰라도 사실 스스로 평가하기에 아주 체계적으로 시간을 보낸 건 아니었어요. 바쁘게 보냈다고 다 귀한 시간인 건 아니거든요. 시간은 쓰는 사람 마음에 따라 가치를 달리 가지는 것 같아요.

 

시간은 불완전한 거잖아요. 영원한 것은 결국 영원이라는 말 뿐이죠. 그마저도 영원하지 않을 수가 있겠고요. 모든 건 결국 언젠가 끝나기 마련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 삶이나, 남자친구와의 연애도 그렇고.

 

여기 굉장히 아름다운 음식이 있다고 해봐요. 와, 정말 아름답다 하면서 제가 숟가락을 갖다 대는 순간, 그 아름다움은 이미 부분을 상실하는 거잖아요. 시간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사진을 찍으면서 시간을 붙잡아 두려고 노력해보기도 하고, 소설을 써서 시간을 보존해보려고 하는 게 아닐까 싶어요. 우리는 결국 시간을 벗어나서 살 수 없잖아요. 일상이든 꿈이든, 문학이든 음악이든 결국 시간과의 타협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우리가 시간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가 어쩌면 세상을 대하는 태도를 결정하리라고 믿어요.

 

네, 감사합니다. 대화를 마치면서 한가지 더 여쭤볼게요. 만약 이 대화가 보라 씨가 남기는 마지막 대화라고 한다면, 어떤 말을 끝으로 지금까지의 모든 말을 마무리하고 싶으신가요.

 

전 그냥 고맙다는 말을 남기고 싶어요. 고마웠습니다, 제가 알았던 사람들. 그럼 다른 말은 필요 없는 것 같아요. 죽는다고 해서 억지로 꾸며대기도 싫고. 돌아보면 정말 제게 있었던 모든 일들이 고마웠어요. 물론, 시간에게도 그렇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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