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NI 박지은의 Names of Beauty

지은 씨는 아름다움이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아름다움을 말로 표현하는 행위가 피상적으로 느껴져서 조심스럽기는 한데요. 개인적으로는 뭔가 뭉클해질 때 아름다움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는 생각이 들어요. 가끔 울컥하고 가슴 뭉클해 질 때가 있잖아요.
그게 꼭 감동적이어서가 아니라, 그냥 지나가다 모르는 사람 눈이라도 마주치면 문득 어디 깊이서 차고 올라오는 뭉클함 같은 것들. 그런 순간들이 아름다움으로 다가오는 때가 많아요.
그런 상황이야 사실 얼마든 다양하게 있는 거죠. 그런데 요즘에는 유독 부모님에게서 느껴지는 뭉클함이 있어요. 꼭 저희 부모님뿐만 아니라 다른 친구의 부모님도 그렇고, 남자친구 부모님을 봬도 그렇고, 누군가 부모님과 함께 있는 모습을 보면 그냥 어디 한쪽이 뭉클해져요.
사소한 이야기를 해보자면, 집에서 엄마가 잔소리를 하실 때가 있잖아요. 그걸 듣다가 저도 좀 짜증을 내기도 하는데 그러다 갑자기 아, 이게 언제까지나 들을 수 있는 잔소리가 아니구나 싶은 마음이 들고 죄송하기도 하면서 진작 엄마 말대로 할 걸 하는 생각을 해요.
그렇게 엄마가 시키는 대로 할 때 잔소리가 잦아들거나 누그러지시는 걸 보면 또 가슴 한쪽이 뭉근하게 녹는 거예요. 요즘엔 점점 더 그래요. 빈도도 잦아지고요. 부모님과 같이 살고 있기도 해서 거의 매일 그런 순간이 찾아온다고 해야 할 정도로요.
작업을 하실 때는 어떠세요? 그런 뭉클한 감정이 지은 씨께서 주제를 고르거나 작업을 하실 때 영향을 주는 편인가요?
어떤 방향으로 접근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기는 해요. 작업을 바라보는 각도에 따라서 제 작업에서 뭉클함이나 그 비슷한 종류의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도 있겠지만, 다르게 접근하면 아름다움과는 전혀 상관없는 작업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기본적으로 제 작업은 대개 어두운 편이에요. 사회적 계급이나 권력을 주로 다루다보니 아무래도 분위기가 무거울 수밖에 없어지는 부분이 있어요. 눈으로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분명 사람들을 가르고 구분하는 선이 있다고 믿거든요. 그에 따라 사는 형편이나 받는 대우가 달라지기도 할 것인데, 분명 그 안에서 발견할 수 있는 뭉클함이 있으리라는 생각은 하고 있어요.
이번 졸업 전시에 걸었던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배경으로 한 연작도 그래요. 러시아 여행을 가서 직접 횡단 열차를 탔거든요. 거기서 보고 느낀 것들을 구현한 작업인데요. 눈 속에서 대륙을 열흘 정도 달리고 나니까 많은 것들이 남더라고요.

#3-4 / oil on canvas / 2016
일단은 외로움. 전 그곳이 정말 외로운 곳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날씨가 사계절 내내 상당히 추운데, 비단 공기만 차가운 게 아니라 사람 한 명 한 명에게서도 한기가 느껴질 정도거든요. 아주 긴 시간 동안 열차 속에서 아무것도 안하고 바깥만 쳐다보고 가는 거예요. 심지어 그 흔한 핸드폰조차 없이요. 스마트폰도 도시 근처에나 가야 보는 거지, 보통 삐삐 정도 사용하시는 분들이 대부분이거든요.
그렇게 다들 같은 방향을 달리면서도 다 외따로 있는 거예요. 각자의 숨을 쉬면서. 어떤 분들은 자녀들이 같이 타는데, 짐만 옮겨주고 기차에서 내려요. 그럼 이제 혼자 남으시는 거죠. 그렇게 얼마나 가야할지도 모르는 길을 묵묵히 혼자 가시는 걸 보기도 하고. 그런 점에서 일단 참 외로운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그 안에서 발생하는 차이 같은 걸 목격하기도 했어요. 열차라고 다 같은 칸이 아니라 어디는 4인석, 2인석해서 좀 안락하게 가는 칸이 있는 반면 어디는 오십 명 정도가 같이 타기도 하거든요. 거기는 거의 도떼기시장인 거예요. 그런데 그렇게 사람이 많이 모여도 다 각자 혼자들이에요. 서로 말도 안하고. 오히려 두세 명이 타는 칸은 아무래도 여유가 있으니까 말도 좀 섞죠. 그렇게 칸마다 느낌이 아주 달라요. 그런 걸 보면서 또 어딘가 뭉클해지기도 했죠.
그림이 좀 그려지는데요. 말씀을 듣다 보니 지은 씨께서 말씀하시는 그 뭉클함이라는 게 어쩌면 연민의 형태로 나타나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어요. 부모님께도 그렇고 외로운 사람들을 봐도 그렇고요.
그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딱 짚어 그걸 연민이라고 이야기할 수 없다고 해도 분명 그 기저에는 어떤 식으로든 비슷한 마음이 깔려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어쨌든 모두 사람이니까요. 아무래도 서로를 바라보면 자연스레 찡한 마음이 드는 법 아닐까요. 결국 같은 방향으로 저물어가는 것들이니까.
제가 집중하는 주제 역시 같은 맥락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우리가 모르는 새에 계급에 종속된다고 생각하거든요. 다 똑같이 보여도 실상은 그렇지 않은 거죠. 제가 열차를 배경으로 선택한 것도 사실 그 공간이 그런 구분을 아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곳이라는 점을 깔고 가기 위해서였어요.
열차를 타기 위해 표를 사면서부터 계급은 나눠지고 적어도 목적지까지는 4인석인지 50인석인지에 따라 우리는 다른 공간의 구성원이 되잖아요. 사실 열차를 떠올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런 생각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다음에 색을 빼고 어둠과 빛을 배치하는 과정이나 사람들의 표정에 집중하는 구도를 잡는 식의 방식들은 사실 주제와 상관없는 모든 주변을 정리하자는 목적에서였거든요. 대부분의 작가들이 마찬가지겠지만 저 역시 작업의 모든 세부 사항을 전부 신경 쓰고 어떻게 하면 제가 하고 싶은 말을 더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데요.
이를테면 장면을 흑백으로 처리하되 어둠을 강조하고 빛을 상대적으로 흐릿하게 누르는 방식이라든지, 빛과 어둠이 부딪히는 경계를 뭉개버린다든지 하는 모든 부분들은 결국 하나의 주제를 가리키도록 설계한 것들이에요.

#3-5 / oil on canvas / 2016
지은 씨 작품을 보고 가장 인상적인 것은 말씀하셨다시피 빛을 사용하는 방법에 관한 것이었어요. 그림을 보는 순간 뭐랄까 저 검정은 진짜 검정이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빛을 빨아들이고 모든 걸 감추는 동시에 또 드러내기도 하는, 그런 검정이 있잖아요. 그래서 지은 씨의 다른 작품도 궁금했는데, 보통 이렇게 흑백으로 작업하기를 선호하시는 편이신가요?
일단 아무래도 지금까지는 학부의 과정을 따라야 했기 때문에 사실 제가 하고 싶은 온전한 저만의 작품을 해볼 기회가 많지는 않았어요. 수업이나 과제에 따라 맞춰가야 소재나 주제를 맞춰가야 하는 입장이었으니까요.
단적으로 흑백을 전면으로 부각한 작업도 이번이 처음이었어요. 평소엔 색깔을 주로 쓰기는 했는데, 그래도 제 방식이나 시선이 묻어 있다 보니 아주 밝은 작품들이라고는 말하기 힘들어요. 아무래도 제가 늘 의식하는 것들이 가볍거나 유쾌한 내용이 아니다보니 자연스럽게 그런 경향이 생기는 게 아닌가 싶어요.
계급이나 권력 문제에 관해 계속 말씀해주시고 계신데, 이런 질문을 드려보고 싶어요. 사회적으로 다양한 종류의 갈등이나 계급 구분이 있다고 해도 우리가 개인으로서 체감하는 갈등은 한계가 있잖아요. 서울에서 살면서 시리아 난민의 입장이 되어 보기는 어려운 것처럼, 말하자면 우리는 우리가 서있는 근처의 갈등만을 통감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지은 씨는 어떠신가요? 특별히 주목하시는 권력 문제가 따로 있나요?
제 주변에서 느끼는 문제요. 사실 자라면서 수많은 문제들을 느껴왔죠. 누구에게나 그런 것들이 있잖아요. 너무 개인적인 이야기가 될 것 같아서 적당히만 말씀드리자면, 전 가부장적인 태도나 성차性差에서 발생하는 갈등들에 주목해온 편이었어요. 할머니로부터 받은 차별들이 있었는데, 그런 맥락에서 오는 압박감들이 있었어요. 자세히 말씀드릴 이야기는 아니지만요.
그럼 다른 이야기를 해볼까요? 이제 졸업 전시를 마치셨으니, 앞으로는 어떤 작업을 해 나가실지가 궁금해요.
사실 계급과 권력이라는 단어를 굳이 사용하고 싶지 않았어요. 제게 이건 우리 일상에 너무 깊이 스며든 것이라고 생각했거든요. 너무 자연스럽게 거기 있어서 자꾸 그냥 넘어가버리는 것 같기는 하지만요. 일단은 학생이니까 제 주제를 명확하게 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단어들을 직접 언급했지만 앞으로는 그걸 조금씩 숨기면서 좀 더 교묘하게 해보고 싶어요.
궁극적으로는 우리가 사회적 계급이나 권력의 분배라는 거대한 틀 안에서 살고 있다는 현실을 꾸준히 지적해볼 나갈 생각이에요. 아무렇지 않게 마트에서 필요한 것들을 사고 있는 것 같지만 실은 그 안에서 다양한 계급 관계가 작동하고 있거든요. 이를테면 그런 것들을 보여주는 작업을 계속 해보는 거죠. 계급 사다리 어느 위치에 있든, 우리는 결국 그 틀 안의 존재들이니까요. 꼭대기에서도, 밑바닥에서도요. 그런 체계 자체의 문제들을 계속 더듬어 나갈 것 같아요.
그러면서 그 속에 갇힌 인간들을 향한 어떤 연민의 시선, 뭉클함의 마음도 늘 가지고 가시게 되는 건가요?
음, 글쎄요. 이런 말씀을 드려야 할 것 같아요. 제가 오늘 이 자리에서 아름다움을 두고 뭉클함이라고 부를 수 있다고 말씀드리긴 했지만, 사실 그런 생각은 언제나 바뀔 수 있는 거잖아요. 내일은 또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이고. 지금까지는 뭉클함을 아름다움이라고 여겨왔지만 다른 계기가 생기게 되면 또 다른 무엇을 아름다움이라고 여기게 될지 모르죠. 그래서 뭉클함을 가지고 갈지는 사실 잘 모르겠어요.
그렇지만 그 흐름을 놓치지 말고 잘 따라 가야겠다는 생각은 늘 하고 있어요. 제가 느끼는 아름다움이 또 다른 형태로 바뀌려고 할 때, 제 고집이나 관념에 갇히지 않고 새로운 생각을 받아들이는 자세가 정말 중요하다고 믿어요. 아름다움에 대해서 가장 필요한 태도는 아마 그런 게 아닐까 싶어요. 저도 굳이 뭉클함만을 염두에 두지는 않고 계속 제 감정이나 생각이 바뀌는 대로 흐름을 따라가 보려고 해요.
감사합니다. 대화를 마쳐야 할 때가 왔네요. 마지막으로 질문 하나를 더 드릴게요. 만약 이 대화로 지은 씨의 모든 말을 마무리해야 한다면, 그러니까 마지막 말을 해야 하는 순간이 지금 지은 씨에게 온다면 어떤 말씀을 남기고 싶으신가요?
참 어렵네요. 죽음을 생각해볼까요. 음, 커피가 마시고 싶을 것 같은데요. (웃음)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떠오르는데요. 왜 그런지 모르겠는데 커피가 너무 마시고 싶을 것 같아요. (웃음) 그래서 딱 한마디를 해야 한다면 이걸로 할게요. ‘아이스 아메리카노’라고요.
* 박지은의 다른 작업은 여기에서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