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멈추지 않는 소선아의 Names of Beauty

December 6, 2016

 

선아 씨, 아름다움이란 무엇일까요?

  

여태껏 아름다움을 느꼈던 순간들을 쭉 돌아보면요. 그건 결국 다 스쳐지나가 버리는 것이더라고요. 예를 들어 어떤 전시회에서 그림을 보고 아름다움을 느낀다고 해도, 사실 그 감흥은 단지 그때뿐이거든요. 사랑하는 사람과 만들어 놓은 근사한 추억들도 사랑이 식고나면 그저 먼지 앉은 것이 되어버리는 것처럼요.

  

그렇다면 아름다움이라는 건 그냥 그렇게 휘발해버리고 마는 걸까, 하는 의문이 들었어요. 아름다운 순간들은 다가오기 무섭게 멀어지고 저는 어쩐지 남겨지는 기분이었으니까요. 그러나 한편으론 전 늘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언제라도 그걸 만끽하고 싶은 사람이거든요.

  

바로 그 간격, 이를테면 그렇게 사라져가는 순간들을 그럼에도 끝내 붙잡아두고 싶은 마음이 어쩌면 아름다움을 구성하는 핵심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늘 한결같이 그 자리에 있는 것들, 그래서 우리가 영원하다고 이야기하는 것들로부터의 감동이 있잖아요.

   

말하자면 이런 거예요. 시간은 흐르고, 아주 좋았던 순간들도 결국엔 지나가 버리죠. 그걸 사진 몇 장으로 박제해 보려고 할 순 있겠지만 그렇다고 멀어지는 것까지 막을 순 없을 거예요. 다 사라지겠죠. 그렇지만 이건 부질없음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에요. 오히려 아름다움에 대한 이야기죠. 아름다움은 형태가 사라지고 난 뒤에야 비로소 남는 본질이니까요.

  

결국 지나가는 순간 속에서도 오래 남는 무엇이라는 말씀이시군요.

  

아름다움은 조형이 아니라 가치에 가깝다고 생각해요. 영원한 가치죠. 흔히 영원한 건 없다고들 말하잖아요. 저도 동의해요. 정확히는, 우리가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것 중에선 그렇다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물건이 사라져도 마음은 남아 있는 거죠.

  

예를 들자면 이런 거예요. 지금 창밖으로 나무가 보이는데요. 바람에 가지가 흔들리고 있잖아요. 바람이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나무가 흔들리니까 우리는 저기 바람이 분다는 걸 확인할 수 있어요.

  

아마 저 나무도 언젠가는 쓰러질 거예요. 여태껏 아주 오랜 시간을 버텨왔다고 해도 끝내 한계는 있는 법이니까요. 그렇지만 나무가 쓰러져도 여전히 바람은 불어올 거예요. 흔들릴 가지가 없을 뿐이죠. 눈으로 볼 수 없다고 해서 바람이 그쳤다고 말할 수 있는 건 아니에요.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영원이란 바로 이런 거예요.

 

부모님을 생각해요. 저는 부모님을 떠올리면 늘 아름다움을 느껴요. 물론 부모님이 영원히 살아계실 것이기 때문은 아니에요. 그 분들께서 결국 돌아가신다고 해도 그분들의 가치와 마음이 제게 남아있기 때문이죠. 저는 이런 마음들이 있다고 믿어요. 훼손되거나 소멸하지 않는 마음들이 여전히 어딘가 남아있을 거라고 믿어요.

 

말씀하신 대로 아름다움은 분명 단순히 볼 수 있는 것 이상의 가치라는 생각은 들어요. 그렇지만 역시 이 세계에 영원한 것이라는 게 과연 존재하기는 할까, 하는 의문이 생기기도 하는데요.

 

적어도 영원하고자 하는 마음은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부모님이 더 이상 계시지 않는다고 해도 부모님께서 주신 사랑까지 다 사그라지는 건 아니잖아요. 주체는 없어져도 마음만은 남아있을 거라고 믿어요.

 

좀 구체적으로, 최근에 아름다움을 느끼신 순간이 있다면 말씀을 부탁드려도 될까요?

 

요즘의 일이라면, 지난 주말에 광화문에 다녀왔어요. 촛불 집회를 갔는데요. 거기서 나름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왔네요. 그 추운 날씨에 모두가 한 마음으로 모여서 뭔가 이야기해보려는 마음이 일단 인상 깊었어요.

 

뭐랄까, 촛불은 어쨌든 금세 꺼지는 거잖아요. 심지가 다 타고 촛농이 모두 떨어지면 그걸로 끝이죠. 그런데 저는 거기서 그런 걸 봤어요. 꺼져가는 불씨를 다함께 옆으로, 옆으로 옮기고 있는 모습이요. 하나의 양초가 다 녹아내린 후에도 덕분에 불씨는 계속 살아있었어요. 그건 제게 명백한 아름다움이었는데, 그때 우리가 바라던 게 바로 순간을 유예하고 영원을 지향하는 일이라는 느낌이 들어서였어요.

 

언젠가 그 모든 촛불이 꺼진다고 해도 뭔가 변화를 바라는, 더 나은 가치를 위해 마음을 합쳐 행동했던 그 날의 기억은 어딘가 남아있을 거예요. 우리가 추구했던 가치도 여전할 거고요. 그건 잠깐의 불꽃놀이가 아니고 꾸준히 타오르는 촛불이었으니까요. 화려하진 않더라도, 단지 순간만 밝히고 잦아들지는 않는 것이죠.

 

불꽃놀이 말씀을 하셨으니까, 이런 비교가 재밌을 것 같아요. 그러니까 선아 씨에게는 불꽃놀이가 아무리 화려하다고 해도 그 자체로 아름다움이 되기에는 부족한 점이 있다는 말씀이신가요? 사실 불꽃놀이에 비한다면 촛불은 심심한 면이 있다고도 할 수 있을 텐데.

 

결국엔 마음이 중요한 것이겠지요. 그 날의 촛불에는 마음이 담겨있었어요. 불꽃놀이에 어떤 가치를 담고 진심을 투영한다면 그것도 아름다움이 될 수 있으리라고 믿어요. 그러나 화려함이나, 기술적인 요령만이 아름다움을 판가름 하는 기준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그것보다는 지속성이 더 중요한 것 같아요. 어떤 식으로든 한번 발산한 빛은 사라짐을 향해 타오르잖아요. 불꽃놀이도 그렇고 촛불도 그렇고요. 그렇다면 거기서 아름다움을 이끌어 낼 수 있는 건 그걸 켜낸 마음에 달렸다고 생각해요.

 

한편으론 이런 걸 생각해 볼 수 있겠죠. 영원한 것이 있기는 하되, 그게 썩 바람직한 가치는 아닐 경우요. 영원한 악惡이나 영원한 불의처럼. 그렇다면 이제 그걸 아름답다고 이야기할 수 있느냐의 문제가 남는 건데, 전 이렇게 생각해요.

 

만약 그런 것이 있다고 해도, 우리가 그걸 영원히 남겨두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있다면 그건 이미 영원하지 않는 거라고요. 무엇이 영원하기를 바라는 마음은, 그 무엇이 영원해도 좋을 만큼 아름다울 때에만 생겨난다고 믿어요.

 

우리가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온 것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거대한 부조리가 마치 영원할 것처럼 버티고 있어도, 그걸 두고만 볼 수 없는 마음이 있는 한 그건 이미 영원과는 멀어지는 게 아닐까.

 

그럼 선아 씨 개인적으로는, 어떤 가치가 영원하기를 바라시나요?

 

어렸을 때부터 생각을 많이 해봤는데요. 살아보니 우정도 사랑도 무엇을 영원히 가져가는 게 참 어렵다는 걸 느꼈어요. 그래서 종교에 의지를 하고 거기서 답을 찾으려고도 했었어요.

  

돌아보면 그렇게 지켜나가고 싶은 건 결국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마음이더라고요. 여기서 사랑이라는 건 이성異性 간의 사랑만을 의미하는 건 아니에요. 그보단 저와 가깝게 알고 지내는 사람들과 주고받은 여러 관계 속에서의 감정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겠네요.

  

제게는 이 마음, 요컨대 주위 사람들에 대한 사랑을 오래 유지하려는 그 마음이 스스로의 아름다움을 지켜나가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가끔 그런 생각을 해요. 우리에게 소중한 것들을 어떻게 잘 지켜나갈 수 있을까.

  

그러려면 일단 항상 타인이 되어보려는 노력이 필요한 것 같아요.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세상은 언제나 또 다른 곳이니까요. 그렇게 타인이 서있는 곳에서 배려하는 마음이 필요한데, 사실 아직 많이 부족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노력해보는 거예요. 이 관계를 보다 더 소중히 생각하고, 지켜나가겠다는 마음가짐을 잊지 않는 것, 그게 정말 중요하다고 믿어요.

  

대화를 마치면서 이제 한 가지 질문을 더 드리려고 해요. 우리가 뱉는 모든 말은 언제나 그대로 마지막 말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볼까요. 지금 당장 이 대화가 선아 씨의 마지막 대화라면, 선아 씨는 어떤 말을 마지막으로 남기고 싶으신지요.

 

음, 이대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지금이 정말 제 마지막이 된다고 해도 썩 괜찮아요.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충분했어요. 그 모든 의미에서, 충분했노라 말하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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