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순목 씨에게 아름다움은 어떤 의미인가요?
‘무엇이 저로 하여금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는가.’라는 질문으로 생각해보자면, 제가 아름다움을 느꼈던 대상들은 일단 압도할 만큼의 스케일이 있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게 순수한 물질적 거대함이 될 수도 있고,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한 사람의 인생이 될 수도 있는데요. 어쨌든 제가 일상적으로 느끼지 못하는 규모를 마주했을 때 따라오는 감정이 있어요. 감동도 있고. 일반적으로 우리가 흔히 아름답다고 이야기하는 것들을 볼 때 느끼는 쾌의 감정을 주기도 해요. 그런 것들을 아름다움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고요.
그런 것들을 고려해 보면, 저에게 있어 아름다움이란 저와 다른 것들을 대하며 느끼는 감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 안에서 쉽게 발견할 수 없는 것들을 볼 때 발생하는 감정, 그걸 아름다움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 같았거든요.
나와 비슷한 것들을 보면 물론 좋기야 하죠. 공감할 수 있고 재밌기도 하고요. 그런데 그건 아름다움이라기 보단 동질감이라고 해야 옳다고 생각해요. 나와 다른 것들은 그걸 더 알고 싶은 마음을 들게 하고 그걸 더 탐구하고 싶게 만들거든요. 그런 마음이 제게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요. 동시에 저와 정말 다른, 제가 받아들일 수 있는 여지를 넘어서는 다름이라면, 아마 그건 쾌가 아닌 불쾌의 감정, 또는 추의 감정을 줄 것 같기도 하네요.
스케일에 대한 이야기가 흥미로운데요. 그건 기본적으로 크기나 양의 문제이기도 한 건가요?
그런 것 같아요. 사실 저는 엄청 대단한 사람도 아니고 그리 놀랄 만한 내용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그런지 월등하게 크거나 강하거나 뭔가 깊이가 있는 걸 보면 저와 다르다는 느낌이 들곤 하더라고요. 그런 감정이 자연스레 멋지고 아름답다는 생각으로 이어지기도 하고요. 동경의 마음이랄까요. 그런 생각을 많이 해요.
최근에 제가 평소에 좋아하던 장르소설 작가를 한 분 인터뷰할 기회가 있었어요. 어릴 때부터 존경하던 분이었어요. 초등학교 때부터 저와 함께 자라온, 말하자면 제 인생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는 이야기들을 쓰신 분이에요. 그분께서 들려주셨던 말들이 기억에 나요. 작품 활동을 하시면서 정말 쓰고자 하셨던 이야기가 뭐였는지, 만들어 나가고 싶었던 세계나 가치관은 어떤 건지에 대한 것들을 이야기해 주셨거든요.
그걸 쭉 듣고 있는데 그건 제가 범접한 적도, 범접할 자신도 없는 경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자신만의 탄탄한 세계를 가지고 계신 걸 듣는데 그 인생 자체가 정말 아름다워 보이더라고요. 최근에는 그분을 뵌 경험이 제가 느낀 가장 근래의 아름다움이었네요.
인터뷰 프로젝트를 진행하다 보면 그런 경험을 자주하게 되실 것도 같은데요.
아무래도 그렇죠. 사실 그런 마음 때문에 인터뷰 프로젝트를 시작하기도 한 것도 있어요. 이렇게 다른 분들을 만나다 보면 어떤 때는 제 자신을 돌아보게 되기도 하지만 사실은 제가 만나는 분들이 가진 아우라나 분위기가 그 자체로 아름답다고 느끼는 경우가 많아요. 그럴 때는 그냥 예술 작품을 감상하듯이 인터뷰를 진행하기도 하죠. 사람이라는 게 그런 것 같아요. 어떤 영화나 예술보다 훨씬 아름답고 깊이 있을 수 있는 것 같아요.
영화 <그래비티Gravity>나 <퍼펙트 센스Perfect Sense>를 좋아하는데요. <그래비티>는 우주적인 배경으로 압도적인 규모를 보여주기는 하지만 사실 역경을 헤쳐 나가는 한 사람의 감정의 규모를 다룬 영화이기도 하거든요. <퍼펙트 센스>도 그렇고요. 두 영화 모두 절망적인 상황에 빠졌을 때 그걸 극복하려는 인간 군상을 담고 있죠. 그런 걸 보면 저와는 참 다르고 (웃음) 그래서 또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고 봐요.
괜한 자기 비하를 하시는 건 아닌가요. (웃음)
제가 그리 나약한 사람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강인한 편은 아니거든요. 남들보다 조금은 더 버티지만 정말 오래 버티는 쪽도 아니고요. 그래서 몇 번의 실패를 겪다보면 알아서 고꾸라지는 경향이 있는데, 그 영화들에선 뭔가 꾸준히 해보려는 의지 같은 걸 볼 수 있거든요. 그게 인간이라는 종種 전반이 가진 의지인지, 혹은 그 인물만의 의지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참 아름다워요.
니체가 말했듯이 우리의 삶이라는 건 계속 회귀되고 같은 상황의 반복만이 가능할 뿐일지도 몰라요. 그러나 정말 그렇다고 하더라도 앞으로 나아갈 의지를 가질 수 있겠냐는 질문에 ‘예스’를 하는 사람들은 그 자체로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일반적으로 순목 씨에게 아름다움이란 순목 씨와 다른 것들에게서 느끼는 것이라는 말씀이신데요. 그래도 대개 한번쯤은 스스로가 아름답다고 느끼는 순간이 있지 않나요?
제 안에서 느끼는 아름다움이라. 글쎄요. 남들이 저를 봤을 때 어떤 부분을 좋게 봐주는지는 모르겠지만, 스스로 아름다운 점이라고 꼽을 수 있는 건 다른 사람의 기쁨이나 즐거움에 쉽게 공감하는 성향을 가졌다는 점이 아닐까 싶어요. 제가 그럴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 굉장히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기도 하고요.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게 아니라, 그저 그 기쁨에 같이 기뻐할 수 있다는 것도 꽤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을 하거든요. 그런 제 모습을 보면 다행스럽기도 하고 그게 나름의 아름다움 을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기는 해요.
나와 다른 성향을 가진 사람들을 보면 그런 모습을 닮고 싶고 배우고 싶어서 아름다움을 느낄 때도 있는 것 같고요. 어떤 사람이 굉장히 멋진 인생을 살아가는 걸 볼 때, 실은 보이는 게 다가 아니라는 걸 알잖아요. 성공을 위해 희생해야 하는 많은 것들이나 그 과정 속에서 포기한 것들까지가 그 인생이니까요.
그런 생각을 하면 역시 나와는 다른, 그렇지만 아주 근사한 삶을 쫒아가려는 시도는 아주 어렵고 그 어려운 것을 감히 해내지 못하리라는 생각 때문에 스스로에게 아름답다는 말을 하는 걸 약간은 꺼리게 되는 것 같아요.
그래도 그런 믿음은 있어요. 이렇게 저도 나름대로 열심히 하다보면 꼭 그 사람들과 같지는 않을지라도 뭔가 나만의 것을 해낼 수 있지 않을까. 그게 다른 사람이 보기에 아름답게 느껴진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요. 노력해야죠.
사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자신 안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기를 어려워하고, 뭔가 자신만의 것을 만들어 내는 시도를 두려워하는 것 같아요. 경제적으로도 심적으로도 그럴 여유가 점점 줄어들고 있지 않나요? 그런 마음이 타인에 대한 무분별한 동경으로 이어지기도 하고요.
저의 경우에는, 남들이 걸어가는 길이나 발자취에 대한 동경이 제 삶을 이끌어나가는 원동력이 되곤 해요. 개인적으로는 세상을 살아가는 다양한 방식을 접하고 배워가면서, 나름대로의 열심을 다해왔다고 믿거든요. 만약 본인이 아름답다고 느끼는 게 있다면 그걸 추구하고 따라 해보기도 하면서 자신의 길을 개척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인터뷰를 하면서 예술 활동을 하시는 분들을 자주 뵙게 되기도 하는데요. 그분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보면 아름다움을 쫓는 행위를 평가절하하거나 의미 없다고 보는 사람들이 점점 늘고 있는 것 같아요. 먹고 살기가 빠듯해진 탓이기도 할 텐데,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예술이 제값을 받지 못하는 경향도 종종 생기고요.
그렇지만 아름다움이라는 건 결국 사람을 사람답게 만들어주는 것이라고 믿거든요. 아름다움이라는 게 단순히 예쁘고 보기 좋은 게 아니라, 더 좋은 것을 보고 느끼는 마음이지 싶어요. 성숙한 시민의식을 갖으려는 태도도 자신이 느낀 아름다움을 쫓는 행위인 것 같고, 선하거나 정의로운 것도 그것이 아름답기 때문에 그렇게 이야기할 수도 있는 거잖아요. 그러니 어떤 식으로든 우리가 아름다움에 대해 더 고민하고 그 가치를 제대로 인식하며 살았으면 좋겠어요. 아름다움을 추구할 때야말로 인생은 의미를 가질 수 있다고 믿어요.
감사합니다. 아름다움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충분히 나눈 것 같고, 이제 대화를 마치려고 하는데요. 글쎄요, 만약 이 대화가 순목 씨의 마지막이라고 한다면 끝으로 어떤 말씀을 남기고 싶으신가요.
끝으로 남기는 말이라면, 서로 사랑하라는 말을 남기고 싶어요. 인간과 인간 사이의 유대로서 느끼는 사랑만큼 저를 감동시키는 것도 사실 없거든요. 인간들은 다 다른데 그렇게 다른 모습들까지 서로 인정하고 믿어주고 사랑해준다면 세상도 더 아름다워지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요.
* 권순목의 <오픈북 인터뷰>는 www.obinterview.co.kr 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