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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이한 강은경의 Names of Beauty


은경 씨에게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요?

아름다움을 느낀다는 건, 감동을 받는 일인 것 같아요. 어떤 걸 보거나 들으며 감동을 느낄 때면 아름다움도 더불어 오거든요. 제가 조금 감정적인 사람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아름다움 역시 하나의 감정이라고 생각하는 편이에요.

감정이라는 게 원래 주관적인 거니까 아름다움을 받아들이는 기준 또한 사람마다 다를 수밖에는 없다고 믿어요. 요컨대 제게 아름다움은 하나의 감동으로 다가오고, 거기에 전율할 때는 언제나 감동과 아름다움을 구분할 수 없죠.

오늘도 그런 일이 있었어요. 아침에 기차역에 갔는데, 거기서는 늘 사람들이 만나고 헤어지고 하잖아요. 거기서 조그만 여자아이가 할머니를 발견하고는 막 뛰어가는 거예요. ‘할머니!’ 하고 소리 지르면서요. 그 아이가 할머니 품에 폭 안기는 걸 보는데 그게 참 아름답게 보였어요. 뭐랄까, 사랑이잖아요. 사랑이라는 감정이 주는 감동이 있는 것이고.

아름다움이 하나의 감동처럼 밀려오는 거라면, 저는 사람들과의 교감에 감동하는 사람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어요. 사람들은 모두 다르잖아요. 그렇지만 사람이니까 느낄 수 있는 감정이 있어서 우리를 연결해주고 서로를 보듬어 줄 수 있다고 믿어요. 그 모습이 제게 감동을 주고, 또 아름다워 보이기도 하는 거죠.

친구들이나 다른 사람들이 제게 친절을 베풀어 줬을 때도 그래요. 얼마 전까지 아르헨티나에서 이 년 정도 공부를 하다 왔는데요. 그 나라에는 ‘친구의 날’이라는 게 있어요. 우리나라에 어버이날이나 어린이날이 있는 것처럼요.

그게 칠월 중순인데, 그날 아르헨티나 친구에게서 생각지도 못한 문자가 온 거에요. 제가 한국에 있어서 직접 볼 수는 없지만 그간 우리가 쌓은 시간들이 얼마나 소중했는지를 말해주고 싶었다면서요. 저와 보낸 시간을 평생 추억하고 사랑한다고. 그 문자를 받는데 얼마나 고맙고 감동스러웠는지 몰라요.

제가 이미 아르헨티나를 떠났는데도 저를 기억하고 연락을 해준 그 마음이나, 저를 사랑한다는 말이 참 감동적이었어요. 그렇게 누군가에게 마음을 털어놓고 진심을 이야기할 수 있다는 건 정말 근사하고 멋진 일이라고 생각해요. 삶을 충분히 아름다운, 뭔가 살아볼 만한 무엇으로 만들어주는 일들이잖아요.

사람 아닌 것들, 이를테면 예술이나 자연에서 느끼는 감동도 아름다움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럼요. 저도 음악 듣는 걸 좋아하고, 거기서 아름다움을 발견하기도 해요. 요새는 FKA twigs나 Burial을 들으면 그래요. 그런 걸 들으면 단순히 그 음악들이 아름답기도 하지만, 나아가 그 음악들이 저를 아름답게 만들어 준다는 느낌이 들거든요.

실은 이 차이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무엇을 아름답다고 말하는 게 단지 그 대상에 대한 판단에 그친다면, 그 대상이 가진 아름다움이 내게로 흘러 들어와서 하나로 뭉근해지는 건 일종의 체험이거든요. 우리가 본 것을 단순히 객체화시키고 거리를 두면서 평가하는 게 아니라 거기에 뛰어들어 물드는 것, 이를테면 그 대상의 세계로 우리는 끌어당기는 감정이요. 우리가 감동이라고 부르는 게 그것이라면, 저는 감동이야말로 아름다움의 다른 이름이라고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아름다움이란 일종의 감동이고, 감동이란 체험하는 것이니까 아름다움 역시 하나의 체험이 될 수 있다는 말씀이시군요.

네. 그래서 저는 영감을 받으려고 노력을 많이 해요. 전공이 스페인어라 일학년을 마치고 멕시코로 어학연수를 갔었어요. 그런 식으로 여행을 많이 다닌 편인데, 보통 그냥 혼자 가요. 혼자 배낭 하나 메고 호스텔 같은 데서 자보기도 하고요. 그렇게 낯선 곳에서 처음 본 사람들에게 말을 거는 일은 제게 정말 많은 영감을 줘요.

작년에도 십이월에 아르헨티나에서 귀국하자마자 몇 주 뒤에 동남아로 여행을 다녀왔어요. 한 2개월 정도 혼자 여행을 했는데, 그 때 미얀마에도 갔었거든요. 미얀마는 제 기준에서는 썩 생활하기에 편한 곳은 아니었어요. 화장실도 재래식이 대부분이고 씻는 곳도 많지가 않더라고요. 그래서 더 매력적인 곳이기도 하겠지만요. 아무튼 트래킹을 하면서 산을 탔는데, 어느 날은 산 속 작은 마을에서 자게 되었어요. 전기도 없고 전화도 없는 외지였죠.

마을 사람들도 영어를 전혀 할 줄 모르시고 저도 그 나라말을 할 줄 모르니 서로 몸짓로만 소통할 수 있는 거예요. 그런데 참 신기했던 게, 말이 전혀 통하지 않는데도 나중엔 눈빛만으로 교감이 되더라고요. 그런 경험들이 제게 많은 영감을 줬어요. 아름다움을 위해 제가 하는 노력이라면 바로 그런 거예요. 세계는 넓고 아직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도 많잖아요. 그런 걸 찾아다니며 새로운 것들을 발견하는 일도 더 많은 아름다움을 느끼는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꼭 해외여행일 필요는 없어요. 국내여행을 통해서도 낯선 환경에서의 경험을 통해 타인과 교감하고 배우고 알아가면서 삶에서 감동의 비율을 늘리려고 노력하다 보면 어느새 세상도 아름다움으로 가득 찬 곳이 되어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감사합니다. 대화를 마무리하면서 하나 더 여쭙고 싶은 게 있어요. 만약 이 대화가 은경 씨의 마지막 대화라고 한다면, 은경 씨는 어떤 말을 남기며 이 모든 걸 마치고 싶으신가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말이 있어요. ‘살아 있는 한, 살아있음을 증명해라.’ 여기 팔에 타투도 했는데요. 저는 살면서 뭔가 삶의 흔적을 남겨야 한다고 생각해요. 대단히 거창하고 위대한 무엇이 아니더라도 일단 살고 있다면, 살아내고 있다는 걸 증명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믿어요.

영화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Finding Vivian Maier>를 좋아하는데, 비비안 마이어처럼 내 삶에 뭔가를 남겨 놓는다면 나중에라도 후세의 사람들에게 또 다른 감동을 줄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좋아하거나 가치를 느끼는 일이 있다면 누구나 그걸 통해서 스스로를 탐험하고 표현해보는 게 어떨까. 저도 사실 그 영화를 보고 필름카메라를 샀거든요. 저와 교감하고 제게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준 사람들의 사진을 좀 찍어보려고요.

* 강은경의 인스타그램 아이디는 fkacarm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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