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냄새나고 싶은 김주엽의 Names of Beauty

주엽 씨에게 아름다움이란 어떤 의미인가요?
일단 기본적으로 아름다움을 느끼는 대상이나 정도는 사람마다 다르다고 생각해요. 미술을 좋아하는 사람은 그림을 보고 아름다움을 느끼고,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은 취향에 맞는 노래를 들으며 아름다움을 느끼겠죠. 관심 분야나 선호에 따라 그런 건 얼마든지 다양해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저는 어떤 편이냐고 물으신다면, 사람들 사이의 관계 속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사람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예를 들어 오래 알고 지낸 친구와 삼겹살에 소주 한잔을 하면서 별 시답잖은 이야기를 나눈다고 해도, 그런 편안한 관계 속에서 찾을 수 있는 아름다움이 분명 있다고 믿거든요. 아름다움이 무엇인지에 대한 대답을 준비할 때 처음 들었던 생각은 바로 그런 것들이었어요. 사람 사이에서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면서 시간을 쌓아나가는 과정이 바로 아름다움 아닐까.
그리고 또 한 가지 더 이야기해보자면, 제가 운동을 좋아하는 편이에요. 각자가 관심을 가지는 분야에 따라 아름다움을 느끼는 영역이 달라지리라는 말씀을 드렸는데, 제게는 운동이 바로 그런 분야인 셈이에요. 그래서 축구를 하러 가거나 야구장에 놀러갔을 때도 아름다움을 느껴요. 탁 트인 넓은 초록색 운동장을 보면 저게 바로 아름다움이구나 싶죠. 저 드넓은 곳에서 달리고 응원할 수 있다는 게 너무 행복하고 설레고 기대되거든요.
두 가지를 말씀해주셨어요. 관계와 운동인데요. 먼저 관계에서 느끼는 아름다움에 대해 좀 더 이야기해보자면, 사실 그런 편안한 관계만 가질 수는 없는 거잖아요. 다른 관계들에서도 아름다움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해요.
물론 다양한 관계 속에서 각기 다른 아름다움들을 발견할 수 있다고 믿어요. 그건 일단 떠오른 예를 말씀드린 것이고, 이제 막 새로 시작하려는 관계들에서도 나름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고 믿어요. 서로 조심하면서 차근차근 알아가기 위한 노력을 할 때도 그렇고 관계가 발전해나가는 동안 거치게 되는 일련의 단계 속에서도 그렇고요.
관계라는 게 그렇잖아요. 내 입장만 생각하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시선에서 고민해보고 배려하는 과정에서 서로의 사이도 공고해지는 것일 텐데 바로 그런 모습이 제게는 아름다움으로 다가오는 거예요. 아, 이 사람이 나를 정말로 생각해주고 있구나 하는 걸 느끼면 그 자체로 이미 고맙고 아름다운 일이 벌어지는 거죠.
여자 친구를 만날 때도 그래요. 저희 둘을 보면, 제가 굉장히 섬세한 편이고 여자 친구는 밝고 털털한 스타일이에요. 저는 나름대로 여자 친구를 생각하면서 사소한 노력들을 하는데, 물론 대단하지 않은 것이지만 그래도 여자 친구가 제 마음을 알아봐주고 고맙다고 말해줄 때는 이 관계가 참 아름답구나, 하는 걸 느끼기도 하죠. 여자 친구가 저를 배려해줄 때도 물론 그렇고요. 알아주기를 바라고 하는 행동은 아니지만 우리가 그렇게 관계를 위해 작은 성의를 쌓아나간다는 사실이 기쁘고 고마운 거예요.
운동에 대해서도 말해볼까요. 운동을 하거나 응원을 하시면서도 아름다움을 느끼신다고 하셨으니.
운동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좋아했어요. 하는 것도 보는 것도요. 특히 축구를 좋아해서 장래희망 쓰는 칸에 언제나 축구선수라고 써놓기도 하고 그랬어요. 넓은 운동장에서 공을 차고 달린다는 것 자체로도 큰 즐거움이지만, 같이 축구를 하는 사람들과의 호흡이나 팀워크를 느낄 때는 정말 짜릿해요.
또 축구선수들이 골을 넣으면 세레모니를 하잖아요. 그게 참 멋져보였어요. 뭔가 뜨거운 게 올라오는 느낌도 들고. 저렇게 멋진 한 골을 만들어내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의 훈련이 필요했을지, 그 안에서 얼마나 많은 의사소통과 호흡이 생겼을지 상상만 해도 굉장히 아름다워요. 서로의 눈빛만 봐도 동료 선수가 어느 방향으로 달려갈지, 어느 방향으로 패스를 할지 바라보는 행복감, 그런 게 있어요.
그렇다면 관계나 운동, 특히 축구 사이의 어떤 공통점은 없을까요? 축구도 단순히 공을 차는 게 다가 아니라 선수들끼리 관계를 이어간다는 점에서 비슷한 맥락을 엿볼 수 있을 것 같아서요.
그렇게도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글쎄요, 그런 생각을 깊이 해보지는 않았는데 분명히 연관이 있는 것 같아요. 사실 축구라는 게 하나의 이야기잖아요. 축구란, 어쩌면 공을 매개로 하는 관계라고도 할 수 있는 거니까요. 하나의 슛을 위해서는 때로 수많은 패스가 필요하잖아요. 그 과정이 다 축구니까, 마치 관계와 같은 것이기도 하죠.
축구에는 그렇게 단순히 점수로 환산할 수 없는 것들이 있고, 말하자면 골 세레모니를 보면서 우리가 감동을 느끼고 환호하는 데에는 그들이 다져놓은 관계에 대한 기쁨도 있다고 생각해요. 좋은 축구는 좋은 팀이 할 수 있는 것이고, 좋은 팀은 좋은 관계 속에서 가능한 것이라면 거칠게 말해서 좋은 축구는 좋은 관계의 결과물이라고도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럼 최근에 주엽 씨가 느낀 관계 속의 아름다움은 어떤 건가요? 예를 들어주실 수 있으신가요?
아무래도 여자 친구 얘기를 할 수 밖에 없네요. 여자 친구가 직장인이거든요. 해서 직장에서 있었던 힘든 일들을 제게도 털어놓곤 하는데, 사실 저는 아직 학생이고 잘 모르는 일들이 대부분이거든요. 여자 친구가 속상한 일이 있다고 해도 그걸 완전히 이해하기 힘들 때도 있어요. 심지어 회사 분들 얼굴조차 모르니까.
그래도 매일 통화를 하면서 그런 투정을 들어주려고 노력했었는데, 언젠가 부터는 약간 지친다는 느낌이 드는 거예요. 무조건 여자 친구 입장에서 공감하려고 노력했지만 저도 나름 제 생활 속에서 힘든 일이 있는 상태에서 그런 통화를 할 때에는 힘이 빠지기도 했고요. 저도 결국 제 사정을 이야기했고, 여자 친구와 약간 소원해져 있던 상태가 있었는데요.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나서 바로 어제였어요.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밤늦게 집에 오면서 여자 친구와 통화를 했는데 여자 친구가 뭔가 하고 싶은 말을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넌지시 물어보니 역시 회사 일이었는데, 제가 늦게까지 일하고 들어가는 길이니까 일부러 말하지 않으려고 했다는 거예요. 나중에 이야기하려고 했다고. 그 말을 듣고 참 미안하기도 하고 한편으론 고맙기도 했어요. 저를 위해 배려해주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고, 모쪼록 둘의 관계를 위하고 생각해주려는 마음이 정말 고맙고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생각해보면 인간관계만큼 중요한 것도 드물어요. 아무리 잘난 사람도 혼자는 못살잖아요. 다 같이 해야죠. 저는 관계라는 게 저절로 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서로 일부러 신경을 쓰고, 노력해야하는 것이죠. 저희 어머니께서는 늘 가까운 사람일수록 더 노력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어요. 요새는 그 말이 그렇게 와 닿아요. 꼭 거창한 게 아니더라도 우리가 관계를 위해 노력하고, 그 노력을 하찮게 여기지 않는 태도가 또 세상을 더 아름다운 곳으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믿어요.
감사합니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이 대화를 마무리하는 한 마디를 부탁드릴까 해요. 사실 우리가 뭔가 말할 때, 그 말은 언제나 당시의 유언인 셈이잖아요. 만약 지금 당장 마지막 말을 남겨야 한다고 한다면, 어떤 말씀을 하고 싶으신지요.
남겨야하는 말이라기 보단, 질문을 하나 던지고 싶어요. 제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애썼던 분들에게요. 과연 제가 그분들에게 어떤 사람이었는지 여쭤보고 싶어요. 대답을 듣지 못하더라도 마지막이라면 한번 물어보고 싶네요. 평소에도 궁금하기는 한데, 막상 하려면 쉽게 할 수 없는 질문이더라고요. 괜히 어색해지고 부담 주는 것 같고. (웃음) 그게 참 궁금해요. 가능하다면 들어보고 고치고 또 애쓰고 싶은 마음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