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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기록하는 박민우의 Names of Beauty


민우 씨는 아름다움을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사람들은 살면서 다양한 것들을 경험하고 그걸 추억하면서 많은 감정들을 느끼잖아요. 저는 기억들에 애정이 생길 때 아름다움을 느껴요. 시각적인 아름다움은 사실 너무나 순간적인 것이라 그걸 과연 아름답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지 약간 회의적인 편이고, 오히려 제가 겪었던 상황을 반추하는 과정이나 혹은 보이지 않는 마음에 아름다움을 느끼는 편이에요.

예를 들어서 과거의 인연들을 회상할 때도 그래요. 그 기억들을 꺼내 보면서 아직 그 순간의 애정이 남아 있다면 그건 아름다운 추억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거죠. 그 사람을 여전히 사랑하고 있지 않더라도 반대로 지나간 날을 혐오하면서 그걸 아름답다고 말할 순 없잖아요. 말하자면 제게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는 건 그 때를 아끼고 소중히 생각하는 마음인 거죠. 무엇에 대한 애정 없이는 아름다움도 없다고 생각해요.

아름다움에 대해 이야기할 때 사랑을 빼놓을 수 없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예요. 만약 우리가 부모님을 생각할 때 아름다움을 느낀다면 그건 그분들이 베푼 사랑에 대한 감정이라고 믿거든요. 어쩌면 사랑 그 자체로 아름다운 거라고 생각해요. 사랑이 없거나 사랑하지 않는 것을 아름답다고 느낄 수 있을지를 생각해보면 고개를 젓게 되죠.

제가 느끼는 개인적인 차원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하자면, 그래서 남자친구를 언급할 수밖에 없어요. 남자친구랑은 처음에는 그냥 알고 지내던 사이였거든요. 우리가 서로 사랑하지 않았던 때에는 둘이 만나도 아름답거나 하지는 않았어요. (웃음) 물론 재밌거나 즐거웠지만 어디까지나 평범한 일상이었죠.

그런데 이 사람을 사랑하게 된 후에 애정을 가지고 다시 한 번 그 순간들을 돌아보니까 그 날들이 문득 참 아름답게 느껴지더라고요. 이 사람이 나를 쳐다볼 때 묻어나는 애정이나 서로가 주고받는 사랑이 관계를 보다 아름다운 무엇으로 만들어 주는 것도 같고요.

부럽습니다. (웃음) 정리하자면 애정이 곧 아름다움의 근간을 이룬다는 말씀이신 거죠.

네, 애정이죠. 아름다움을 이루는 많은 요소들이 있겠지만 애정이 그 중심에 있다는 생각이에요. 개인적으로 저는 과거에 집착이 많은 사람이라, 지나온 순간들은 대체로 아름답다고 이야기하곤 하거든요. 몇 년 전에는 아주 힘들기만 했던 날들도 지금 와서 반추하면 또 나름의 아름다움을 찾곤 하는데요. 저는 그게 밟아온 길에 대한 애정이 생겼기 때문이라고 믿는 거죠.

지금 여기 이 작업실이 겨울에는 굉장히 추웠어요. 그 때는 너무 힘들고 그랬는데 지나고 나니까 그것도 젊은 날의 추억이 되고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게 되더라고요. 물론 살아온 모든 시간에 전부 애정을 쏟을 수는 없겠죠. 그렇지만 종종 그렇게 남는 것들은 아름답고 소중한 추억으로 가지고 갈 수 있는 것 같아요.

우리가 예술에서 아름다움을 느낄 때에도 거기에 녹아있는 애정 덕분이라고 말씀하실 수 있으실까요?

그럼요. 어떤 작품들은 그냥 예쁘다거나 특이하다는 느낌을 줘요. 단순히 신선하고 참신한 작품들도 있죠. 그런데 그런 수준을 넘어서 제게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는 작품들은 작가가 작업을 하면서 거기에 애정을 쏟았다는 걸 느끼게 하는 것들이에요. 작가가 진심 어린 애정을 가지고 만들어낸 작품들은 특유의 분위기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럴 때는 그저 독특하고 재미있는 수준에서 그치는 아니라 보다 웅숭깊은 뭔가가 되는 거죠.

민우 씨는 어떠신가요. 작가로서 작업을 하실 때에도 그런 것들을 표현하고자 노력하시는 편이신가요?

작업을 할 때에는 사실 크게 염두에 두지는 않았어요. 그저 아름다움에 대해 물어보셨으니 나름의 답을 드린 것이지 굳이 작업을 통해서 그런 것들을 말하고자 하는 의도는 없었거든요. 그런데 아름다움에 대해 생각하면서 제 작업들을 살펴보니까 제가 다뤄왔던 주제들이 어떤 맥락을 이루고 있더라고요.

이를 테면 제가 꾼 꿈이라든지, 몸소 겪은 상황이나 경험에 관한 것들인데요. 아마 그 과정도 과거에 대한 제 나름의 애정을 표현하는 방법인 것 같기도 해요. 제가 집착이 좀 있는 편이라 늘 과거의 이야기를 하긴 했지만 그게 왜일까 고민해본 적은 없었거든요. 이런 생각들을 하니 어쩌면 제가 무의식적으로나마 끊임없이 아름다움을 쫓고 있었다는 생각도 들어요.

앞으로 작품 활동을 계속하면서도 아마 이 문제는 계속 가지고 가야 할 거라고 생각해요. 예술에 있어서, 그리고 제 작품에 있어 아름다움이라는 건 정말 중요한 화두라고 믿거든요. 저는 제가 경험한 것을 토대로 작업을 하면서 그걸 보시는 분들과 감정을 공유하기를 원해요. 무엇보다 제가 느끼는 애정을 나눠보고 싶은 거죠. 제 생각에 애정은 곧 아름다움이니까, 다시 말해 그건 아름다움의 범위를 넓히는 일이 될 수도 있으리라 믿어요.

관객 분들께는 어떤 말씀을 하시고 싶으신가요.

저도 미술을 하는 사람이지만 사실 전시장에 가면 이해할 수 없는 작품들도 있어요. 그렇지만 꼭 이해할 수 없더라도 그저 작품을 보고 아름다움을 느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는 생각을 해요. 미술이란 게 분석하고 궁리할수록 더 멀게만 느껴질 것 같기도 하고요.

저야 주변에 미술을 하는 친구들이 많으니까 자연스레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고민도 하는 것이지만, 사실 미술관을 찾고 각자 아름다움을 느끼려는 관객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하고 뿌듯하거든요. 시간이 더 된다면야 얼마든지 깊이 숙고하고 어쩌면 직접 창작을 해볼 수도 있겠지만 꼭 그런 게 아니더라도 미술을 접하고 그 속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고자 하는 태도만으로도 건강하고 의미 있는 활동이라고 생각해요.

감사합니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하나 더 여쭤보려고 해요. 이 대화가 민우 씨의 마지막 대화라고 가정한다면, 마치면서 어떤 말을 남기고 싶으신가요? 그러니까 인간 박민우의 마지막 말이라고 생각하신다면.

마지막 말이라고 하시니, 불쑥 엄마가 떠오르네요. 무슨 말을 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엄마에게 뭔가 말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벌써 좀 울컥하는데요. 제가 감정이입을 잘하는 편이라. 정말 죽는다고, 이게 마지막 말이라고 상상하니까 조금 감정이 받치네요.

솔직히 모두에게 남기고 싶은 말은 없어요. 제가 뭔가 가르쳐줄 만큼 오래 살지도 못했고, 저도 늘 후회하면서 살고 있으니까요. 지금 유학 준비를 하면서 약간은 힘든 날들을 보내고 있기도 한데요. 물론 이런 기억들도 나중에는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을 거라는 건 알아요. 그렇지만 누구나 부모님께만큼은 늘 죄송하고 후회스러운 게 사실이잖아요.

만약 제가 마지막 말을 해야 한다고 한다면, 그래서 부모님께 미안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다른 친구들이나 지인들께는 당장 힘들고 어렵더라도 지나고 보면 다 추억이 된다는 말을 할 수 있다고 해도, 부모님께는 늘 죄송한 마음이니까요. 늘 죄송하죠. 그래서 눈물이 나나.

* 박민우의 인스타그램 아이디는 p.minu, 홈페이지는 parkmin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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