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속에 여물어 가는 남윤승의 Names of Beauty

June 23, 2016

 

윤승 씨는 아름다움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신가요?

  

나이를 먹어갈수록 아름다움의 기준을 특정하는 일이 점점 어려워진다는 생각이 들어요. 젊었을 때는 미추美醜에 대한 구분이 명확했거든요. 제가 좋아하는 것들, 호감을 주는 것들을 위주로 아름다움을 판단했으니까요. 그런데 최근에 들어서는 무엇이 정말 아름다운지 분명하게 이야기하는 게 정말 쉽지만은 않다고 느껴요.

  

일단 지금까지 고민한 바를 말씀 드리자면, 아름다움이란 결국 ‘그래서 그러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아름다움을 어떻게 인식하느냐 하는 부분에 있어서, 우리 인간은 그저 시간이라는 열차에 올라탄 여행객일 뿐인 것 같아요. 사람이란 그저 어느 플랫폼에서 아름다움이라는 기차를 스쳐 보내며 기다림을 반복하고, 때로는 잠시 그 기차에 몸을 실어 보기도 하는 존재인 거죠.

  

이를 테면 아름다움은 상황이나 시간과 함께 지나가는 것이고, 그래서 아름다운 것과 그렇지 않은 것 역시 본질적으로 정해져 있다기 보다는 매번 그 형태를 바꾸며 다가온다는 생각이 들어요. 늘 변하는 것이죠. 다만 우리가 그 순간을 어떻게 기억하느냐가 중요한 문제라고 믿어요.

  

아름다움도, 아름다움을 받아들이는 사람도 결국 상대적이라는 말씀이시군요.

  

후배들에게 가끔 이런 질문을 해요. 무엇이 과연 인생에서 주목할 만한 것인지. 제 생각에 아름다운 순간이란, 어쩌면 슬로 비디오로 연출할 수 있는 것들이지 않나 싶거든요. 예를 들어 두 사람이 만나 처음 사랑에 빠지는 순간이나 꽃이 개화하는 과정, 아이의 해맑은 웃음은 슬로 비디오를 걸어서라도 두고 보고 싶은 것들이잖아요. 그만한 가치가 있는 것들이고.

  

제가 느끼는 아름다운 순간들은 다 그렇게 슬로 비디오로 만들어 낼 수 있는 무엇이에요. 아름다움은 하나의 찰나로 스쳐갈 뿐이고, 우리는 어쨌든 지나간 걸 잡고 늘어질 수 밖에 없잖아요. 그 순간들을 돌아보고 추억하면서라도 조금이나마 아름다움을 연장하고 싶은 거니까

 

최근에 오랜만에 경복궁 역을 지날 일이 있었어요. 연애할 때 집사람을 참 많이 기다렸던 장소거든요. 사실 장소 자체는 그때와 변함이 없는데, 어쩐지 굉장히 낯설게 느껴지더라고요. 아마도 시간 속에서 녹이 슬면서 제 나름의 방식으로 그곳을 추억하고 있었기 때문이겠죠. 아름다움을 발견하기 위해선 그렇게 시간이라는 통과의례를 거쳐야만 하는 것 같아요.

 

아름다움이 스쳐가면 그 뒤로는 그걸 추억하는 시간만이 남게 되는 셈인 걸까요

 

시간이라는 게, 흔히 젊음이 아름답다고들 하잖아요. 그건 순간이기 때문이에요, 짧기 때문에. 고등학교 때 선생님께서 그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조화와 생화를 두고서 왜 우리는 생화를 더 아름답다고 이야기 하느냐, 그건 바로 생화가 담고 있는 생生의 순간 때문이라는 거예요.

 

만들어진 꽃은 영원할 수 있지만 살아있는 찰나를 이길 수는 없죠, 그런 순간들이 우리를 남겨두고 지나가면, 우리는 그것들을 계속 기억하고 회상하면서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되는 법이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추억하는 방식, 사진을 찍거나 영상을 만들거나 이야기를 써내는 것들은 어쩌면 아름다움을 포착하고 보존하려는 노력이라고도 할 수 있어요. 슬로 비디오를 말씀 드린 것도 그래서예요. 우리는 그것들이 아주 지나가 버린 다음에도 조금 더 천천히, 오래도록 들여다보기를 원하잖아요. 인생에서 아름다운 순간들은 다 그렇게 기억되는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대화를 마치기 전에 한가지를 더 여쭤보려고 하는데요. 만약 이 대화가 윤승 씨의 마지막 대화라고 가정한다면, 마지막으로 어떤 말씀을 남기고 싶으신 지가 궁금해요.

 

누군가 이 대화를 읽는다면, 그건 저에 대한 애정이나 관심이 있는 분일 거라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제 말은 아마 그분을 향한 것이 될 테죠. 그분께 이런 말씀을 해드리고 싶어요. 당신은 정말 잘해내고 있고, 최선을 다하고 있고, 당신이 했던 선택들이 혹 남들에게는 잘못되거나 부적절하다고 여겨질 수 있지만, 나만큼은 당신의 선택을 응원하고 있노라고. 앞으로도 그 선택에 대해 후회하지 않도록 열심을 다해 달라고. 그렇게 이야기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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