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심꾼 이동준의 Names of Beauty

June 17, 2016

 

동준 씨는 아름다움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시나요?

  

글쎄요. 생각해보면 최근에 딱히 아름다움을 느낀 적이 없어요. 일상이 좀 무료해서 그럴지도 모르고, 제가 무신경한 사람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는데, 아무튼 요새는 아름답다는 표현을 딱 갖다 붙일 만한 일이 별로 없었던 것 같아요. 즐겁거나 기쁜 순간, 혹은 밝거나 유쾌한 느낌이 드는 일들은 있었는데, 이걸 ‘아름답다’고 할 수 있는지는 확신이 들지 않네요.

  

실은 아름다움이라는 걸 정말 우리가 명확하게 정의할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들어요. 대화를 앞두고 며칠 동안은 아름다움이라고 하는 것의 정체를 고민했어요. 우리는 보통 아름다움을 본능적인 감정이나 느낌이라고 생각하는데, 문득 그게 아닐 수도 있다는 의구심이 생기더라고요. 어쩌면 아름다움이란 하나의 종합적인 집합에 가깝지 않나 싶은 거예요.

  

좀 더 자세히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우리가 각자 아름다움에 대해 이야기한다고 하면요, 그걸 느끼는 이유나 기준은 너무나도 다양하잖아요. 분노나 기쁨을 느낄 때와는 다르죠. 희로애락에 대한 반응은 대개 비슷하고, 그 감정들에 대한 전반적인 인식의 공유가 가능한데, 아름다움은 그렇지 않으니까요. 우리가 아름다움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하지만, 그건 아주 개인적인 거라서, 내가 느끼는 아름다움과 다른 사람이 느끼는 아름다움이 같은 거라고는 결코 이야기할 수 없는 거예요. 두 사람이 한 대상을 아름답다고 말해도, 그들이 아름다움을 느끼는 부분은 서로 다를 수 있는 것처럼요.

  

결국 아름다움이라고 하는 건 특별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대상과 그 대상을 마주했을 때 느끼는 감정들을 개인이 임의로 묶어놓은 하나의 집합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말하자면 그건 날 때부터 가지고 태어난 것이 아니라, 경험하고 배워가면서 체득하는 무엇인 거죠. 당연히 사회적, 문화적 영향도 중요한 요소가 될 거고요.

  

기뻐하는 법, 혹은 분노하는 방법을 따로 배우지는 않잖아요. 그건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것이지만, 아름다움은 좀 다르다고 믿어요. 아름다움은 개인이 ‘난 이걸 아름답다고 이야기하겠어’ 하고 나름 정의하고 기준을 설정하면서 구역을 상정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어쩌면 마음먹기에 달린 셈이라고도 할 수 있겠죠.

  

그러니까 아름다움이라는 것은 자연스러운 본성이라기 보다는 학습되는 관점, 개인에 따라 얼마든 달라질 수 있는 종합적인 인식이라는 의미인가요?

  

그렇죠. 예를 들어 아름다움이라는 개념에 대해 모르는 상태에서 누군가 커피를 마셔요. 맛있고, 커피의 향이나 그 순간의 분위기가 전반적으로 썩 마음에 들어요. 그 때, 그 자리의 다른 누군가가 이게 아름답다는 말을 해요. 그 후 이와 비슷한 느낌이 드는 대상을 마주했는데, 다른 이들이 또 그게 아름답다는 말을 해요.

 

이런 과정이 반복되면, ‘이런 느낌을 아름답다고 하는구나’ 하는 기준이 생기는 거예요. 그것이 정말 아름다운 것인지는 알 수 없죠. 다만 그 사람은 그걸 아름다움이라 느끼기로 한 것일 뿐이에요. 그게 원래부터 아름다운 것이라서 우리 모두가 필연적으로 동의해야 한다기보단, 그저 한 개인이 마음먹은 순간 아름다움이 만들어지는 것이죠. 그 기준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분노의 경우, 분노를 느끼게 하는 대상과 분노라는 감정 사이에 장애물이 없어요. 분노할 만한 일이 생기면 바로 분노를 느끼죠. ‘이걸 분노라고 하자’, 혹은 ‘이것에 분노하자’라고 생각한 후에 화를 내는 경우는 없잖아요. 분노하고 나서야 그게 분노인 줄 아는 거죠. 아름다움은 거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간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어떤 감정을 종합적으로 느끼고 그걸 받아들이는 과정 속에서 이 정도는 아름답다고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면 그때서야 비로소 아름다움을 느끼게 되는 거죠.

 

그래서 저는 아름다움의 위치를 어디로 봐야 할 것인지가 중요한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 생각엔 이게 일차원적이고 본능적인 반응은 아니고, 그렇다고 고차원적인 지적 판단은 또 아니거든요. 어쨌든 우리가 아름다움을 느낄 때, 치밀한 논리나 이성적 숙고를 통해서 그 정도나 수준을 계산하지는 않으니까요. 그렇다면 결국 아름다움이란 건 감정과 이성 사이 그 어딘가에 존재하는 것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말하자면 그 둘을 모두 포함한 총체적인 어떤 집합일 수도 있겠다는 게 지금까지 내린 나름의 결론이에요.

 

그럼 동준 씨가 상정한, 동준 씨의 개인적인 아름다움의 집합은 무엇인가요?

 

하나의 구절로 이야기해야 한다면 제 기준은 ‘같지 않음’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어요. 아름다움은 같지 않은 것들에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천편일률적인 것이 아니라 각기 다른 것들, 혹은 약간의 변주 속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곤 하거든요. 패러디의 경우도 그렇게 이야기할 수 있고, 개성이랄까, 작은 부분에서의 차이가 한 개체를 보다 특별하게 만드는 법이잖아요.

 

개인적으로도 그런 차이들을 계속 만들어 내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가끔은 좀 강박적이라고 느끼기도 하는데. 남들이 하라고 하는 거, 다 같이 하는 거 안 하려고 기를 쓰고 (웃음). 아까 아름다움도 학습되는 거라는 말씀을 드렸잖아요. 저의 기준도 사실 학습한 거라고 볼 수 있어요. 어렸을 때부터 이렇게 해야 한다, 저렇게 해야 한다, 뭐 이런 말들을 너무 듣고 자라다 보니까 다르게 하는 게 더 멋져 보이고, 그런 것들에 끌리게 된 거죠.

 

주위 사람들은 제가 되게 부정적이고 우울하고 쉽게 좌절하는 편이라고 이야기해요. 스스로도 그렇게 느끼는 바가 있는데, 같지 않은 것들을 보거나 혹은 그렇게 되기 위한 시도를 할 때는 그런 부정적인 감정이 좀 완화가 돼요. 개성을 획득하는 과정에서 오는 즐거움이 있죠. 전 그걸 아름답다고 이야기하기로 결정한 셈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겠네요.

 

굳이 ‘다르다’고 말씀하시지 않고 ‘같지 않다’고 이야기하신 이유가 있나요?

 

 ‘다르다’라는 표현을 써도 틀리지 않아요. 그런데, 사람들은 ‘다르다’라는 말을 들으면 보통 A와 B의 관계처럼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성질이 다른 걸 생각하잖아요. A와 A’의 관계도 포함된다고 말하기 위해 ‘같지 않다’라고 말한 거예요. 대부분 비슷하지만 어떤 부분에서는 일치하지 않는, 그런 약간의 차이만으로도 저는 분명 다른 무엇과 구별되는 고유함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예를 들면,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 혹은 한 시간 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분명 한 사람이죠. 이 두 사람을 다른 사람이라고 말할 수는 없어요. 그렇다고 이 둘이 정확히 똑같은 사람이라고 이야기 할 수 있냐고 물어본다면, 저는 그럴 수는 없다는 입장이거든요. 우리는 살면서 계속해서 변하는 존재들이니까요. 바로 이런 부분, 다시 말해 다르다고 할 수는 없지만 같다고 이야기할 수도 없는 영역에 ‘같지 않음’이 존재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일부러 제 아름다움의 기준을 ‘같지 않음’이라고 말씀 드린 거고요.

 

물론 이 차이를 느끼는 정도는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죠. 동성애를 아예 사랑이 아닌 다른 어떤 것이라고 보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건 그냥 대상만 같지 않은 사랑이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는 거잖아요. ’다름’에 대한 민감도에 따라 아름다움을 느끼는 대상도, 정도도 달라지는 거라고 생각해요. 사회 구성원 각각의 고유한 다름을 얼마나 포용할 수 있느냐가 한 사회가 가진 아름다움의 총량을 결정한다는 생각도 들고요.

 

아름다움이란 개인이 주체적으로 설정한 기준이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그렇다면 동준 씨 역시 같지 않은 것들 사이에서 아름다움을 찾기로 선택하신 거라고 볼 수 있을까요?

 

그렇다고 볼 수 있죠. 제가 느끼는 아름다움이란 제가 배워온 것이고 그렇게 하기로 상정한 것이거든요. 저는 같지 않은 것들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겠다고 마음 먹으면서, 이걸 이상향, 인생의 목표, 혹은 제 삶의 원동력으로 삼겠다고 다짐했다고도 말할 수 있어요. 남들과 같지 않게 살아보리라고 결정한 셈이죠.

 

지금까지 그러기 위해서 노력했고, 아마 앞으로도 당분간은 그 기준에 따라 행동할 것 같아요. 그런 면에서 아름다움은 제가 앞으로 걸어갈 길의 큰 방향을 제시해주는 지표이기도 한 거예요. 제가 곡을 쓰거나 진로를 결정해야 할 때나 하다못해 머리를 자를 때에도 저는 과연 이것이 남들의 것과 어떤 부분에서 얼마나 같지 않을까를 먼저 고민해보는 거죠. 저만의 것, 고유하고 독특한 것을 찾으려는 시도라고도 할 수 있고요.

 

감사합니다. 슬슬 인터뷰를 마쳐야 할 것 같은데요. 만약 이 대화가 동준 씨가 남기는 마지막 말이라고 가정한다면, 어떤 말을 남기고 싶으신지 궁금하네요. 그 말을 끝으로 인터뷰를 마치겠습니다.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네요 (웃음). 저는, 사람이라면 크든 작든 자신만의 구역을 남기고 가는 편이 좋다는 생각을 해요. 그게 기록으로 남아서 역사가 될 수도, 아니면 가까운 사람의 기억 속에서만 유효할 수도 있겠지만, 어떤 식으로든 자기만의 뭔가를 지닌 채로 삶을 끝낼 수 있다면 좋겠네요. 사실, 아직까지 저만의 것을 가지지 못했어요. 그래서 더 살고 싶고 (웃음),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다짐하게 되네요. 잘 살아봐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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