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 길을 걷는 이한길의 Names of Beauty

June 6, 2016

 

한길 씨는 아름다움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기본적으로 저는 평소에 아름다움을 자주 느낀다거나 쉽게 감동하는 사람은 아니에요. 사실 그런건 없는 게 아닐까 생각도 해봤어요. 성격 자체가 약간 비판적이기도 하고, 세상이라는 게 기본적으로 아름답기만 한 곳은 아니라고 믿는 편이거든요. 그래서 질문을 받고 나서 아름다움에 대해 본격적으로 생각해보면서 실은 반대편에서 저 반대쪽을 바라본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렇기 때문에 발견할 수 있는 것도 있는 법이겠지만.

 

개인적으로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이나 그 기저에는 일종의 모순이 항상 존재한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우리는 행복하고 싶다고 말하지만 현실에서 너무 힘들어하고, 무언가 나아지고 싶다고 말하지만 자기 방어 같은 것들을 말하면서 변하려고 하지 않잖아요.

  

옳은 것을 해야한다고 말하지만 그른 행동을 하고 뭔가를 하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현실 속에서 그걸 전부 다 실현하면서 살지는 않잖아요. 그럴 수도 없고요. 누군가를 좋아하고 사랑해도 포기하고 헤어지는 것처럼 말이에요. 

 

말하자면 인생의 바닥, 혹은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이런 식의 모순이 자리 잡고 있는 거예요. 거칠게 얘기하면 우리는 그저 하고 싶은 것들을 하지 못하면서 살아가는 존재라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거죠. 흔히 말하는 꿈이라는 것도 그래요. 이룰 수 없고 다가갈 수 없는 것인데, 어떤 식으로든 마음에 담고 살아가는 거니까요. 

 

그렇다면 결국 아름다움이란 불가능한 게 아닌가요?

 

만약 세상이 그냥 모순들로만 가득 찬 곳이었다면 아마 그랬을지도 몰라요. 그런데 찬찬히 생각을 해보니까 아무래도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이 전반적으로 정반합의 과정이지 않나 싶더라고요. 내가 하고 싶은 것과 내가 해야 하는 것들 혹은 이룰 수 없는 현실 사이의 간극을 조정해가는 게 인생 이기도 하잖아요. 

 

저는 이 궁극적인 모순을 하나의 거리감으로 느끼곤 하는데요. 말하자면 갖고 싶고 이루고 싶은 것들은 항상 멀리 있고 어쩌면 우리는 평생 그것들과의 간격을 좁히려고 발버둥치는 존재들일지도 모르죠. 어쩌면 영영 닿을 수 없는 곳에 닿기를 끝내 포기하지 않는 태도가 굳이 이야기할 수 있는 아름다움이 되는 거고요. 

 

결국엔 우리가 사람이니까. 물론 벅차고 힘들겠지만, 그래도 우리는 사람이니까 좀 더 잘해보고 싶고, 좋은 사람이 되고 싶고 뭔가 나은 무엇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거라고 믿어요. 그게 불가능하다고 할지라도 끊임없이 모순을 극복하려는 마음가짐, 그게 이 세상을 조금이나마 아름답게 만드는 동력이라고 믿어보는 거죠.

 

그 거리감, 이른바 모순을 극복하려는 태도가 아름답다는 말씀이신데, 만약 그 모순을 완벽히 극복해서 해소할 수 있다면 그건 어떤가요? 아름다움의 궁극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저는 사실 모순을 완전히 해소할 수는 없다고 믿어요. 사람이라는 게 참 신기한 동물이라서, 뭔가를 이루어 냈다고 해도 또 다른 목표를 세우고 다른 욕심을 내니깐요. 그런 욕심들이 계속해서 모순을 만들어내고 이상과 현실 사이의 거리를 벌려놓는 거고요. 결국 모순을 완벽히 극복하는 게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그런 스스로의 모순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조정하는 모습이 아름답다고 믿는 거예요. 

 

한길 씨도 스스로가 자신 모순들을 인정하는 편이신가요? 

 

그럼요. 저에게도 모순은 너무 많죠. 우리가 아무리 잘난 사람이라고 해도 다 이루고 살 수는 없잖아요. 저도 제게 주어진 환경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하고 싶은 것, 혹은 해야만 하는 것들 사이의 균형을 찾기 위해서 나름 노력하고 있어요. 그게 스스로의 모순을 줄이는 방법이라고 믿으니까요.

 

사실 그 과정이 쉽기만 한 것은 아니라서, 기본적으로는 바로 그런 고단함 때문에 세상 전반에 대한 비관적인 시각을 갖기도 한 게 사실이에요. 살아가는 것이 가끔 힘에 부치고 어려운 것도 본질적으로는 이런 모순들 탓이니까요. 누구나 하고 싶은 걸 마음껏 하지 못하는 세상이잖아요.

 

그렇지만 한편으로 오히려 바로 그런 점이 또 아름다움을 낳기도 하는 거예요. 그 자체로 하나의 모순이라고 볼 수도 있는데, 어쨌거나 이 수많은 모순들이 없다면 거기에 저항하면서 조금이나마 내 삶을 살만한 것으로 만들어보려고 하는 노력 역시 가능할 수가 없잖아요. 이런 점이 참 재밌기도 해요. 

 

말하자면 한길 씨가 느끼는 아름다움은 세상을 살아가는 하나의 태도라고도 할 수 있겠군요.

 

이게 사람을 바라보는 하나의 관점이기도 하지만, 사실 예술을 대하면서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충분히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어요. 예를 들어 한 점의 그림을 본다고 생각해보자고요. 만약 우리가 그 그림을 아름답다고 느낀다면 그건 우리가 예술이라는 형식을 하나의 노력, 이를테면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것을 표현하고 이상과의 거리를 좁히려는 일종의 방편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는 셈이죠. 

 

그런 특수한 예외적인 순간들을 포함한 일상의 곳곳에서 우리의 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은 언제나 진행되고 있고, 그게 바로 이 세상을 그나마 살만한 곳으로 만들어준다고 믿어요. 그 노력이 반드시 대단하고 거창한 형태로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상관없어요. 아주 사소하더라도 일단 끊임없이 시도하는 태도나 의지가 정말 중요한 거니까요. 

 

아름다움에 대해서 이렇게 묻고 답하는 것도 사실 우리가 완전히 파악 수 없고 실현할 수 없는 무엇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고자 하는 노력인 셈이잖아요. 그런 면에서 이런 대화 역시 그 자체로 아름다움을 구현하기 위한 일종의 시도라고 봐도 무방할 거라고 생각해요.

 

말씀을 들으면서 한길 씨의 생각도 참 아름답다고 느꼈는데요. 기본적으로 한길 씨가 말씀하신 세상의 모순들, 그 자체로는 부정적이기만 한 것들 속에서 아름다움을 찾아보려는 자세 역시 모순을 극복하기 위한 훌륭한 시도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에요.

 

그렇게 되도록 저도 더 노력을 해야겠죠. 아직 그 단계에 확실히 올라와 있다고 단언할 수는 없겠지만 어쨌거나 저도 나름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나아가 봐야죠.

 

감사합니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한 가지 더 여쭤볼 것이 있어요. 만약 이 대화가 한길 씨의 마지막이라고 가정한다면, 끝으로 어떤 말씀을 남기고 싶으신가요?

 

마지막, 혹은 죽음에 임박했다고 하면 흔히 후회의 감정이 가장 먼저 떠오를 것 같아요. 살아오면서 너무 감추고 사려온 것들에 대해 생각하다보면 자연히 그럴 수밖에 없을 텐데요. 그렇다면 후회를 줄이기 위해서 우리는 스스로에게 좀 더 솔직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나를 속이지 말고 살고 싶다고. 오늘 죽는다면 사랑했던 것들에게 사랑한다고 말하고 좋아했던 것들에게 좋아한다고 말하고 싶다고요. 나를 속이고 기만하고 합리화 하면서 살지말자고. 가뜩이나 어렵고 이미지화 된 세상인데 스스로한테 만큼은 조금만 정직해져도 괜찮을 것 같아요. 그래야 지금이 마지막이라도 행복하겠죠.

 

사람을 만나든 무슨 일이 있든 거짓을 줄이고 최대한 진실하고 솔직하게 살아간다면 마지막에 와서도 덜 후회할 수 있을 거라고 믿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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