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적으로 상대적인 오정화의 Names of Beauty

정화 씨에게 아름다움이란 어떤 의미인가요?
예전에 한번 제가 여태까지 좋아했던 여자애들을 쭉 돌아본 적이 있어요. 그 친구들 사이에 어떤 공통점이 있지 않을까 싶어서. 사실 생김새도 서로 너무 다르고 딱 보기에 일반적인 경향이 있지는 않아 보였거든요. 근데 잘 생각해보니까 다들 기독교를 믿었더라고요. 전 기독교인도 아닌데. (웃음) 굉장히 혼란스러웠죠.
그렇다고 제가 평소에 기독교에 대해서 딱히 호불호가 있는 것도 아니에요. 그냥 하나의 신앙으로서 존중을 할 뿐이지 그걸 이성적인 매력의 요소로 꼽지는 않는단 말이죠. 그 친구들이 기독교인이라서 좋아했던 것도 아니고 지나가는 사람이 기독교를 믿는다고 해서 좋아하게 될 일도 없을 거예요. 그럼에도 그게 그 친구들 사이에 존재했던 단 하나의 공통점이었던 거죠.
그러니까 말하자면 그 친구들에게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었던 공통적인 이유라는 건 사실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던 거예요. 그런 식으로 계속 생각을 확장해보면서 제가 일반적으로 느끼는 아름다움에 대해 고민해보니까 그것도 마찬가지더라고요. 제가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들 사이에 어떤 일관된 맥락이 있지는 않더라는 거예요.
결국 제가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들의 유일한 공통점은 그걸 수용하는 사람이 바로 저일 뿐이라는 결론에 도달했어요. 제가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들은 다시 말해 나라는 사람이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들이고, 제게 아름다움이란 다른 무엇이 아니라 그저 제가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이라고 이야기 할 수 있는 거죠.
정화 씨가 없다면 정화 씨가 느끼는 아름다움도 당연히 존재하지 못할 테니까요.
돌이켜봐도 그래요. 흔히 이야기하는 것 중에 추억 보정이라고 있잖아요. 시간이 지나면서 기억이 왜곡되거나 하는 현상이요. 저는 개인적으로 고3 당시에는 그 시절을 불행하게 보냈다고 생각했어요. 음악을 하겠다고 말을 꺼냈다가 아버지께 욕을 엄청 먹고 사이가 틀어지기도 하고, 그러는 와중에 수험생활도 병행하느라 심적으로 힘에 부쳤거든요.
그런데 이제와 돌이켜보면 그때가 사실 굉장히 행복하고 아름다운 시절이었더라고요. 그때 당시에는 힘들고 괴롭기만 했던 날들이 지금 생각해보니 꽤 아름답고 눈부신 시간들이었던 거죠. 말하자면 고3 시절이라는 하나의 사실을 아름답다거나 혹은 아름답지 않다고 판단하는 건 다른 무엇이 아닌 바로 저인 것이죠. 다른 무엇이 아니라.
정리하자면, 정화 씨에게 아름다움이란 어떤 순간에 정화 씨가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들이라는 말씀이신가요?
네, 바로 그 순간에 제가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만이 제게 아름다움이 될 수 있어요. 그 기준은 시시때때로 바뀌기도 하고 어떤 맥락이 있다고 말할 수도 없지만, 분명한 건 제가 아름다움을 느끼는 대상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이고, 그렇다면 제게 아름다움이란 순간순간에 제게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는 것들의 집합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죠. 마치 배설 욕구과도 같이, 그때그때 느껴지는 반응이라고도 할 수 있고요. 그게 제가 느끼는 아름다운 것들의 공통점이에요.
물론 아름다움이라는 게 반드시 그 순간에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 어느 정도의 시간을 버티면서 유지되기도 하죠. 제 생각에는 그런 경험들이 쌓이면서 한 사람의 미적 취향이나 가치 판단의 기준이 형성되는 게 아닌가 싶어요.
사실 우리가 아름다움을 느낄 때, 아름다움에 대해 완전히 이해한 상태로 그걸 받아들이는 건 아니잖아요. 그냥 그 순간 무엇이 아름다울 뿐이고 그런 순간들이 축적되면서 종합적인 어떤 형태가 갖춰지는 거죠. 그렇게 하나의 미적 기준이 만들어지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러다가도 때로는 어떤 계기를 통해서 한 사람의 아름다움의 척도가 완전히 달라지기도 하는 거죠. 제가 고3 시절을 다르게 생각할 수 있게 되었듯이.
그렇다면 지금의 정화 씨에게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 가장 최근의 사례를 말씀해 주실 수 있으실까요?
사소한 일화이기는 한데, 지금 녹음을 덜 마무리한 곡이 하나 있어요. 그 곡을 만들게 된 계기가 재밌는데, 제가 자취를 하다 보니까 가끔 어머니께서 먹을 걸 보내주세요. 한번은 쌈 야채를 보내주신 거예요. 그걸 먹으려고 씻고 있는데 애벌레 하나가 있더라고요. 이게 여기까지 살아왔구나 왠지 기특하기도 하고, 해충도 아닌데 굳이 죽일 필요가 있겠나 싶어서 그냥 바깥 화단에 넣어줬어요.
어머니께 택배 잘 받았다고 전화를 드리면서 그 이야기를 했는데, 다음 날에 어머니께서 문득 전화로 저한테 이게 좋은 곡감이 될 수 있겠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생각해보니까 정말 그렇기도 하고, 그 작은 에피소드가 사실 아무 일도 아니면서도 뭔가 아름답게 느껴지는 거예요. 그게 왜 아름다울까 생각해봐도 잘 모르겠어요. 그냥 제가 아름답다고 느꼈기 때문이라고만 말씀드릴 수 있을 뿐이죠.
저도 그 이야기에 아름다움 면이 분명 있다는 생각은 드는데, 왜 인지는 딱 잘라 말하기 어렵네요.
그런 거죠. 저는 종교가 없는데 사람이 살다 보면 믿는 구석 하나 정도는 있어야 되잖아요. 그래서 개인적으로 저는 모든 것은 상대적이라는 사실만이 절대적이라고 믿으면서 살아요. 아름다움이라는 것도 그런 맥락에서 보면 굉장히 상대적이고, 어쩌면 인구 수 만큼이나 각자 다르게 존재하는 거라는 생각이 들죠. 만약 아름다움이란 게 어떤 한 사람이 그걸 느끼는 순간마다 존재하는 것이라면, 정말 엄청 다양할 거예요.
음악을 만드실 때도 마찬가지신가요? 말하자면 악기를 선택한다거나 내용을 쓸 때에도 그때그때 느끼는 것들에 집중하시는 편이신지.
그렇다고 할 수 있어요. 음악에 대해서 말씀드리자면, 제가 기초 이론 지식이 있는 건 아니고 일단은 감으로 곡을 만들고 있거든요. 듣고 느끼는 모든 게 공부가 되는 셈인데, 그러다보니까 좋아하는 장르나 스타일도 정말 다양하고 방대해요. 그 속에서 제가 느끼는 것들, 당시에 하고 싶은 이야기에 따라 사운드를 고르고 배치하는 편이에요.
하나의 공통점이라면 형식적으로 힙합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는 점일 텐데요. 꼭 다른 이유가 있어서라기보다는 그게 다른 장르에 비해 많은 텍스트를 유용하고 있다는 사실이 좋더라고요. 랩은 다른 장르가 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긴 말을 소화할 수 있잖아요. 때로는 수필이 되기도 하고 소설처럼 이야기할 수도 있고, 가끔은 시처럼 문장을 만들 수도 있고요.
물론 그런 형식이라고 해도, 제가 필요하다고 느끼면 얼마든지 부술 수 있을 것 같기도 해요. 어떤 식으로든 그렇게 제가 쓴 이야기를 듣고 사람들이 꽤 가치 있는 음악이라는 생각을 한다면 바랄 나위가 없겠죠.
감사합니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만약 이 대화가 정화 씨께서 남기는 마지막 말이라고 가정한다면 끝으로 어떤 말을 남기고 싶으신지 궁금한데요.
지금은, 솔직히 개인이 살아가기에 썩 좋은 세상 같지는 않아요. 만약 제가 여기서 제 몫을 마치고 떠나더라도 언제나 그 뒤엔 남겨진 사람들이 있을 텐데, 그래서 저는 부디 힘내라고 말하고 싶어요. “May the Force be with you all.”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