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심함을 즐기는 김대영의 Names of Beauty

대영 씨는 어떤 때에 아름다움을 느끼시나요?
저는 본성에 충실한 모습이 개체의 아름다움을 드러낸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서 들판에 새가 날아다닌다고 하면요. 새의 본성은 하늘을 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으니까, 그 장면에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죠. 그렇지만 도시에서 비둘기들이 걸어 다니는 모습을 보면서 아름다움을 느끼는 사람은 그보단 훨씬 적을 거예요.
그렇다면 인간에게 있어 본성에 충실하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가 중요한 문제로 남는 건데, 저는 그것을 '사색'이라고 생각해요. 다른 동물이 아닌 인간이 이렇게 문명을 발전시키고 시대를 이끌어 올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깊게 생각할 줄 아는 힘 때문이라고 믿거든요. 그것이 인간답고, 인간의 본성에 가장 충실한 순간이라고 믿는 거예요.
사색하는 사람이 아름답다라. 그것이 인간의 본성이니까요.
한병철 선생님이 쓴 <피로사회>라는 책에도 사실 비슷한 구절이 나와요. '깊은 심심함'이라고 일컫는 사색의 시간에서 인간은 가장 창조적일 수 있다는 이야기였는데요.
구석기 시대의 인간들에겐 생존을 위해 들여야 할 시간들, 이를테면 사냥을 하거나 불을 피우면서 보내야하는 시간이 지금보다 절대적으로 길었죠. 심지어 그런 활동들을 동시에 해내야 했어요. 밥을 먹는 와중에도 들짐승들을 경계해야 한다거나 하는 식으로요.
점점 사회가 발전하면서 인간에게 스스로의 생각에 충실히 빠져들 수 있는 여유가 생긴 거고요. 우리는 이제 자신만의 사색에 빠져서 깊이 고민해 볼 시간이 주어진 셈이고, 이를 잘 활용하는 것이 인간다움, 말하자면 인간의 아름다움을 구현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대영 씨는 개인적으로 사색을 자주 하시는 편인가요?
저는 글 쓰는 걸 좋아해서요. 한 문장 한문장을 써나가면서 어떤 단어를 통해서 어떤 문장을 구성할지를 아주 긴 시간을 들여 생각하곤 하는데요.
그렇게 충분히 고민하고 오랫동안 숙고하는 그 시간들이 가장 뿌듯하고 가장 저답다고 생각해요. 겉으로 보기엔 아무것도 안하고 있는 것 같지만 제 안에선 무수한 생각과 낱말들이 튀어 오르고 또 사그라지거든요. 그때가 제게는 가장 빛나는 순간이 아닐까.
저는 그렇게 글을 쓰면서 아름다움을 발견하는데,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않을 수 있죠. 각자 고민하는 형식이나 내용이 다를 거예요. 그렇지만 정말 중요한 건 우리가 무엇이든 그렇게 숙고하고 있다는 사실이라고 믿어요.
요즘엔 다들 너무 바쁘고 이런저런 콘텐츠가 많아서 온전히 혼자인 채로 사색의 시간을 갖기가 어려워진 것도 현실이죠. 연습이 좀 필요한 것 같아요. 그냥 친구를 생각하면서 시간을 보내도 좋고 아무런 활동을 하지 않아도 좋으니 보다 내면에서 치열한 시간들을 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요.
꼭 거창하게 폼 잡고 어려운 주제에 골몰하는 것만이 사색은 아니죠.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하는 모든 것들이 생각의 재료가 될 수 있어요. 그런 걸 붙잡고 오래 바라볼 때 비로소 인간들이 인간다워 질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렇지만 결국 생각은 활동을 통해 구현되는 무엇이잖아요?
그래서 한나 아렌트 같은 정치학자들은 인간들이 더 많은 활동을 통해 삶의 지평을 넓혀나가야 한다고 이야기하기도 해요. 저도 물론 활동이 덜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다방면에서 운동하는 사람들을 폄하하고 싶은 마음도 없어요.
그렇지만 우리가 수행하는 활동들의 질이나 성격을 고려해볼 필요는 있을 것 같아요. 말하자면 어쩔 수 없이 내몰린 곳에서 타의에 의해 움직이는 것과, 자신이 곰곰이 생각한 바를 실천으로 옮기는 것은 적지 않은 차이가 있다고 생각해요.
무엇보다 생각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믿는 거예요. 잘 모르는 문제나 주제에 대해 무작정 손을 쓰기 전에 일단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고민해보는 게 순서이고, 또 그것이 인간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인 것도 같아요. 물론 구조의 문제도 간과할 수 없지만, 개개인이 노력하면서 조금이라도 더 그런 시간들을 마련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감사합니다. 인터뷰를 마치기 전에, 이것이 삶에서 남기는 마지막 말이라고 가정하고 뭔가 남기고 싶은 말이 있는지 궁금해요.
글쎄요. 보다 솔직해질 수 있지 않을까요. 평소에는 하지 못했던 말들을 털어놓고 끝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요. 마지막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