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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주의자 홍현민의 Names of Beauty


현민 씨에게 궁금한 것은 이런 거예요. 아름다움을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제가 좋아하는 말 중에 이런 게 있어요. 노자가 남긴 말인데, '명가명 비상명'이라고. 무엇인가에 이름을 붙이면 그것은 항상 그 이름일수 없다는 그런 문장인데요. 사람마다 해석은 달라질 수 있겠지만 그 문장을 읽고 저는 함부로 무엇을 정의 내리고 단정 짓지 말아야겠다고 느꼈어요. 본질적인 것은 정의내릴 수 없는 거니까요.

사실 아름다움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처음 이 질문을 받을 때에도 약간 조심스러웠어요. 이것이 아름다움이라고 단정 짓는 순간 그것이 아름다움이라고 제가 믿어버리는 것이 두려웠거든요. 그래서 다른 아름다움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될까봐.

그렇다면 현민 씨는 아름다움을 콕 집어 하나의 단어로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으신 거군요?

네. 하나의 단어로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아요. 모든 존재, 그것이 무엇이든 그냥 존재만으로도 전부 아름답다고 이야기하고 싶어요. 모든 것에는 각자가 가진 고유한 매력이나 아름다움이 있을 뿐이고, 그걸 발견한 사람과 아직 발견하지 못한 사람이 있을 뿐이죠.

안타까운 점은 많은 사람들이 아름다움을 특정한 기준이나 가치에 따라 한정짓는다는 사실이에요. 말하자면 소위 미의 기준이라는 게 있어서, 세상에 다른 아름다움을 미처 보지 못하고 누군가 정해놓은 미의 기준을 답습하게 돼 버리는 거죠.

그렇게 아름다움에 대한 관념이 사람들에게 주입되는 걸 보면 고개를 젓고 싶을 때가 많죠. 미의 기준도 기실 시대나 장소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지는 것인데, 그걸 절대적인 것으로 여기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세상 모든 존재가 다 그 자체로 아름다워요. 각자가 지닌 아름다움은 누가 정의할 수 없는 것이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태도가 중요한 것 같아요. 우리가 살면서 모르고 지나치는 무수한 아름다움이 있는 법인데, 우리가 모르고 있다고 해서 혹은 조금 다르다고 해서 그걸 아름답지 않다고는 말할 수 없는 거죠.

그럼 현민 씨가 특별히 아름다움을 느꼈던 장면이나 기억이 있나요?

집으로 돌아가던 어느 저녁이었어요. 제 앞에 한 커플이 손을 잡고 걸어가고 있었고요. 그날은 비가 내려서 땅도 촉촉하고 젖은 풀냄새도 나고, 가로등 불도 은은하게 번져있었어요. 그 아래로 한 쌍의 연인이 지나가고 있었던 거예요.

그 모습을 보고 참 아름답다고, 마치 한 폭의 그림 같다고 생각했어요. 서로가 참 예쁜 사랑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죠. 그렇게 그들의 뒤를 한참 따라 걷고 있었는데, 문득 두 분 다 남자라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었어요. 게이 커플이었던 거죠.

제가 그들의 모습을 보고 든 생각은 단순히 아름답다는 거였어요. 어, 게이커플이네 같은 생각은 하지 않았던 거예요. 모든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운데, 그 아름다운 모습을 먼저 보기보다 단지 그들의 성별이 같다는 이유만으로 그 모습을 신기하게 바라보거나 혹은 그들의 사랑을 부정하려는 사람들을 보면 조금 안타깝더라고요.

사실 아름다움을 뜻하는 ‘미美'라는 낱말도 어디에나 붙여 쓸 수 있잖아요. 순수미, 관능미, 지성미 심지어 백치미도 있고. 그러니까 아름다움이라는 건 그저 존재의 성질이지 않을까, 모든 존재가 응당 가지고 있는 무엇이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해보는 거죠.

그럼 우리는 아름다움에 대해서 어떤 고민을 해야 할까요?

자신만의 아름다움을 자각하지 못하고 남들이 짜놓은 틀로 스스로를 우겨넣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세상이 규정한 기준을 존중하는 건 중요하지만, 단지 그것만을 추구하다 나다움의 아름다움을 잃어버리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다시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자면, 저는 따로 아름다움을 정의하고 싶지는 않아요. 제가 이름을 붙이는 순간 아름다움에 대한 틀을 제 스스로 또 짓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거든요.

이 인터뷰에 응하고서 정말 하고 싶은 말이 있었어요. 우리가 이미 충분히 아름답다는 사실을 모두가 알았으면 한다는 거예요. 각자가 지닌 고유의 아름다움은 누구에게나 있는 건데, 그것을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애써 바꾸려고 하거나, 나는 다른 아름다움을 지녔다고 해서 스스로를 자책할 필요는 없다고 믿어요.

감사합니다. 마치면서 남기고 싶은 말이 더 있으실까요?

사랑하며 살자. 저는 옛날부터 스스로를 '사랑주의자'라고 불러왔는데요(웃음). 그건 이성 간의 사랑일수도 있고, 친구나 가족끼리의 사랑일수도 있고 더 나아가 인류애나 자연에 대한 사랑이 될 수도 있겠죠. 어떤 형태로든 저를 둘러싼 이 모든 것들을 더 많이 더 깊이 사랑하면서 살고 싶어요. 그리고 우리 모두 함께 서로를 사랑하며 살자고, 이야기하고 싶어요.

#명가명비상명 #모든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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