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쪽> 편집인 권혁빈의 Names of Beauty

혁빈 씨에게 아름다움은 무엇인가요?
저는 아름다움이란 결국 즐거움이라고 생각해요. 이건 실제로 미학 용어이기도 한데, 칸트를 읽으면 아름다움은 곧 '쾌'를 불러오는 것이라고 표현 하거든요. 여기서 쾌가 바로 영어로는 'Pleasure', 즐거움이에요.
칸트의 말에 전부 동의할 순 없다고 해도, 기본적으로 아름다움은 그걸 느끼는 사람을 즐겁게 해주는 거라고 생각해요. 무엇에 즐거워할지는 각자가 다르겠지만요.
누군가는 여기 있는 커피를 마시면서도 즐거워할 수 있어요. 이 안에서 맛을 찾고 꽃을 보기도 하고 향을 음미하기도 하면서 즐기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 사람들에게는 커피가 또 하나의 아름다움이 되겠죠. 거기서 재미를 느끼니까요.
어떤 사람들에게는 심지어 스트레스도 하나의 즐거움이 될 수 있다고 봐요. 공포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거기서 느끼는 충격을 즐기면서 그걸 아름답다고 여길 수도 있죠. 그런 식으로 가끔 사람들은 정말 의외의 곳에서도 즐거움을 찾아내는 것 같아요.
예를 들면요?
대영박물관 가보면 시계 컬렉션이 잘 되어 있어요. 시계라고 하는 건 사실 굉장히 오래된 취미활동 중에 하나거든요. 왜 취미냐, 생각해보면. 기계 내부에서 톱니들이 맞물려 돌아가는 모습이 그 자체로 하나의 우주예요. 거기에 아주 정밀한 수학적 질서가 있잖아요. 거기서 즐거움을,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사람들이 있는 거죠.
철도도 그래요. '철덕'이라고 부르잖아요. 철도, 기차 좋아하는 사람들. 그 사람들에게는 레일을 따라서 그 무거운 게 움직인다는 사실이 경이롭고, 그것들이 작동하는 순서나 유기적인 흐름을 바라보는 일이 오래된 즐거움인 거예요. 수많은 역에서 각자 출발하는 열차들이 어떻게 하나의 선을 공유하는지, 그런 꽉 짜인 질서가 있는 세계잖아요. 복잡하고 절묘한 논리들.
취미라는 게 그래요. 아름다움을 취하는 행위라는 뜻인데, 취미는 일단 재밌어야 하는 거잖아요. 세상에 얼마나 많은 종류의 곤충과 식물들이 존재하는지, 누군가는 또 그런 걸 알아가는 데에서 아름다움을 느끼기도 하고. 다 그렇게 시작하는 것 같아요.
그럼 혁빈 씨에게 개인적으로 즐거운 일은 무엇인가요?
저는 미술사를 전공하고 있거든요. 흔히 미술사라고 하면 역사보다는 미술에 가깝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저는 이것을 하나의 역사라고 생각해요.
역사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즐거움이란 그런 것이죠. 지금은 16세기 독일미술사를 공부하는데요. 사실 지금의 저와는 전혀 관계없는 일이잖아요. 그런데 그 시대 사람들의 이야기를 정리를 하면서, 때로는 한 인물에게 동화되기도 하고 때로는 삶이라고 하는 과정의 어떤 보편성을 느끼기도 해요. 그런가 하면 지금 우리들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펼쳐지는 광경을 목격하기도 하고요. 정말 신기해요. 그럴 때마다의 즐거움이 있는 거죠.
마르크 블로크라는 프랑스 사학자가 있는데, 그 사람도 아들에게 이런 질문을 받았다고 해요. '아빠는 왜 역사 공부를 하는 거예요?' 그래서 그 분이 가만히 앉아서 생각을 해보니까 결론은 하나더라는 거죠. 재밌으니까 하는 거다.
운영 중인 <두쪽>도 그런 맥락에서 시작한 사이트인가요?
그건 리뷰를 전문적으로 써보자는 의도에서 시작했어요. 원칙이 몇 가지 있어요. 원고는 무조건 두 페이지 안에서 끝나야 한다거나 하는 식으로요.
기본적으로는 내 눈을 사로잡는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나에게 즐거움을 주거나 혹은 꼭 즐거움이 아니더라도, 심지어 그것이 불쾌일지라도 좀 제대로 들여다보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그렇게 시작한 사이트예요.
사실 처음엔 도저히 견딜 수 없을 정도로 형편없는 것들에 대해서도 자주 썼어요. 그런데 문득 아, 세상에 참 좋은 것들이 많고 그것만 이야기해도 바쁜데 왜 나는 이렇게 별로인 걸 붙잡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즐거운 일들만 따라다니는 것도 쉽지 않은 법이잖아요. 그래서 요새는 그런 걸 많이 쓰려고 해요.
그렇군요. 앞으로도 좋은 글 계속 기대하겠습니다. 혹시 끝으로 남기고 싶은 말씀이 있으실까요?
남기고 싶은 말은 없어요. 저는 뭐 나중을 생각하거나 하는 성격이 아니라서. 이게 정말 제 마지막 말이 된다고 해도, 딱히 할 말이 없어요. 그리고 굳이 제가 남기려고 하지 않아도 남을 말은 남게 되는 것 같더라고요. 그 정도로 충분하죠.
* <두쪽>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http://twopage.kr 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