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산 사는 서성훈의 Names of Beauty

성훈 씨는 아름다움을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아름다움이란 시간인 것 같아요. 인류가 자연에 산재한 아름다움을 자각하고 기록한 다음부터 비로소 우리가 그것에 대해 체계적으로 고민해보게 되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 뒤로 자연을 모방하면서 스스로 그렇게 되기를 원해온 거고요. 옷에 자연의 것들을 넣기도 하면서요. 대표적으로 꽃들의 다채로운 색들처럼. 그것들이 없었다면 우리는 색을 상상조차 하지 못했겠죠.
그런데 그 자연이라는 것도 아주 오랜 시간을 거치면서 여태 존재해온 거잖아요. 인간들이 그것의 아름다움을 인식하기 훨씬 전부터요. 인류가 태어나기 전부터 지금까지 자연은 나름의 삶의 방식을 축적하고 버텨오면서 어떤 양태, 이른바 우리가 아름다움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것을 지닐 수 있게 된 거라고 믿어요. 그렇기에 우리가 흩날리는 벚꽃이나 지는 석양을 보고 아름다고 이야기 할 수 있는 거죠.
결국 아름다움을 얻기 위해선 일정량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예전에 만들어진 예술 작품들, 예컨대 비너스 동상을 현 시대의 기술로 얼마든지 재현할 수 있잖아요. 그러나 그것이 제 아무리 원작과 비슷하다고 해도 상대적으로 덜 아름답다고 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역시 쌓아온 시간에 달려있다고 봐요.
아름다움이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역사와 이야기들이 먼지처럼 쌓여서 누적되는 무엇이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요. 충분한 시간을 들이지 않고 급조된 것들은 제게 아름답게 다가오지 않아요.
그렇다면 새롭게 만들어지는 것들은 아예 아름다울 수 없는 걸까요? 이를테면 우리는 막 출시된 스마트폰의 생김새에 감탄하기도 하고 때로는 ‘신상’에 매혹되기도 하잖아요.
아이폰을 예를 들어 얘기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새로운 아이폰이 등장하면 대개 사람들은 그것의 아름다움에 대해 얘길 나누며 전작보다 좋다 또는 못하다 평가를 해요. 그때에 우리가 느끼는 아름다움 역시 시간성에 기인한다는 것이죠.
그 기계의 디자인을 고안하고 구현하기 위해 쏟은 시간들이 어쩌면 아이폰을 아름답다고 느끼게 하는 근원이라고 보는 거예요. 그 후에 단지 그걸 모조한 듯한 상품이 나올 때 우리가 느끼는 아름다움이 반감하는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다고 생각해요.
신상품이라고 해서 마냥 새로운 것은 아니고 그것이 만들어지는 동안 걸렸던 시간까지를 모두 역사로 봐야 한다고 믿어요. 나름의 감성이나 이야기, 혹은 철학을 쌓는 일은 결코 한 순간에 가능하지 않으니까요.
어떤 존재가 아름답다면 그 존재의 과정까지도 모두 포함하기 때문이라는 말씀이신가요?
네. 자연이 그렇듯이. 자연이란 게 거저 생긴 게 아니고 어떤 찰나에 딱하고 성립된 것도 아니잖아요. 그건 아주 천천히, 길고 긴 과정을 거치면서 서서히 구현된 것이고 그래서 이와 같은 아름다움을 품을 수 있는 게 아닐까 하는 느낌인 거죠.
평소에 그냥 우스갯소리로 길에서 처음 보는 여자가 아름답지 않냐는 이야기를 하곤 하는데, 그것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제가 누군가를 볼 때 아름다움을 느낀다면 그건 그 사람이 살아온 역사와 이야기 때문이에요. 그걸 사람의 분위기라고 할 수도 있겠네요. 그 사람이 어떤 시간을 보내왔는지에 따라 한 사람이 가진 아름다움의 총량이 결정되는 거라고 생각해요.
제가 노가다를 하니까 또 이런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는데, 서울을 보면 그래요. 청계천이나 한강 가보면 예뻐요. 잘 닦아놓은 길이나 조명 배치도 그렇고. 그런데 그것이 제게 아름다운지를 자문하면 고개를 조금 갸우뚱 할 수밖에 없는 거예요.
너무 급조된 것들이니까요. 그 장소들에 녹아있는 역사와 맥락을 보존하는 과정은 생략한 채 단지 편의성이나 현대적인 감각, 혹은 속도만을 중요시하는 태도는 아름답지가 않죠. 예쁠지언정, 아름답지는 않은 거예요.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도 사실 그래요. 뭐든지 빨리빨리 해치우려는 모습도 어딘가 결여된 행태라고 봐요. 시간은 반드시 필요한 거잖아요. 뭘 하려면 그만큼의 시간이 필요한 건데, 우리는 종종 그 사실을 잊어버리는 거 같아요.
감사합니다. 끝으로 남기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할 말이요? 사랑해(웃음).
* 서성훈의 인스타그램 계정은 seocd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