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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귀요미 빠리의 Names of Beauty


빠리 씨는 아름다움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그럼요. 그건 봄날의 꿈같은 거예요. 깊은 잠 말고 한 이십 분 정도 잠깐 눈 붙였을 때 꾸는 꿈이요. 분명 있는 것 같았는데 고새 사라져버리고 마는 거죠.

꿈은 실체가 없어요. 그렇지만 실체가 있다고 하는 것 중에서 꿈보다 또렷하게 존재하는 게 어디 있어요? 제게 아름다움이란 바로 그런 거예요. 있되 있지 않고, 있지 않되 그 무엇보다 있는 것이요.

어려운데요. 예를 들어 설명해줄 수 있나요?

음... 말하자면 지금 이 대화 같은 거라고 할 수 있겠네요. 자, 이 대화는 형의 꿈속에서 이루어지고 있죠. 형이 곧 낮잠에서 깨면 이 대화는 없던 일이 될 거예요.

그러나 우리가 꿈을 꾸는 동안에 그런 생각을 하지는 않죠. 지금 형이 그렇듯이요. 이 대화는 이 순간 분명 존재하고 있는 것이고 이 모든 것이 끝나는 순간에도 이 대화를 했었다는 사실만은 변하지 않을 거예요.

그렇다면 이 대화는요, 과연 정말 있다고 할 수 있는 걸까요? 아니면 아예 없다고 하는 게 옳은 걸까요? 있으면서 있지 않고, 있지 않으면서 있는 것이라고 해도 될까요? 저는 잘 모르겠어요.

다만 분명한 것은, 제가 아름다움을 느낄 때는 이것이 한편의 꿈과 같은 형태로 다가온다는 사실뿐이에요. 그런 면에서 저는 이 대화도 감히 아름다운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싶어요.

형과 이런 대화를 나누는 건 아마 꿈에서만 가능한 일일 텐데, 바로 그 점, 이 대화가 '있으면서 동시에 있지 않은 시간'에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제게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빠리 씨에게 아름다움이란 한바탕 꿈과 같은 것이어서 그것을 느끼고 있을 때에는 생생하지만 결국 어떤 실체로서 거기 있는 무엇은 아니라는 말이죠?

그렇다고 할 수 있어요. 그냥 그런 느낌이에요. 이제 형이 잠에서 깨고 우리의 대화를 몽땅 잊는다고 해도 전 이게 이 순간 분명 있다고 믿어요. 그게 아니라면 이 모든 게 다 무슨 소용이겠어요. 아름다움도 그런 거 같아요.

말해줘서 고마워요. 같이 산 지도 꽤 오래됐는데 이런 이야기는 처음이었네요. 너무 늦어서 미안하고 여러모로 변변치 못한 형이지만 앞으로도 잘 부탁해요.

이제라도 물어봐 줘서 고마워요. 형이 사다주는 옷들은 내 취향이 결코 아니지만, 형이 날 사랑한다는 건 알아요. 어제가 월급날이었다는 것도요. 사진을 예쁘게 찍혀줄 테니 날씨 좋은 주말에 날 데리고 나가서 맛있는 걸 사줘요.

그리고 다음에 꿈에서 만나면 초콜릿을 먹여줘요. 그게 참 맛있다고 형이 그랬잖아요. 그래놓고 나는 한 입도 안주긴 했지만. 암튼 그걸 먹는 꿈이란 정말 아름다울 거예요. 그렇게 해줄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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