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철없는 장여리의 Names of Beauty


여리 씨는 언제 아름다움을 느끼시나요?

다른 사람들에게서 아름다움을 느낄 때도 있긴 하지만 보통은 저 스스로에게 아름다움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당연한 말일 수도 있는데, 저에겐 제가 모든 생활의 중심이거든요. 제가 아름다움을 느낄 때는 스스로 행복할 때고, 행복하려면 일단 자신감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세상은 그걸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이 반영된 곳이라고 믿어요. 지금 제 마음에 따라 같은 것도 다르게 보일수도 있는 거죠. 어떤 의견을 말할 때도 자신을 설득한 다음이라면 그 말에서 이미 확신과 또렷함을 느낄 수 있거든요. 선택의 순간에서도 자신감을 가지고 나아가는 사람은 걸음부터 달라요. 그런 점에서 아름다움에 있어서도 자신감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사실 요즘 좀 고민하던 부분이 있어요. 아무래도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자신감이 떨어지는 때가 있잖아요. 저는 게임을 만드는 회사에 다니고 있는데, 연차가 많이 나는 선배들과 일하다 보니까 제 부족한 점이 더 크게 느껴지게 될 때가 있더라고요. 특히 제가 존경할만하다고 느끼는 분들이다 보니 든든하기도 하지만, 그분들의 눈높이만큼 나도 따라가고 싶다는 욕심이 커져서 한편으론, 제가 가진 능력이 너무 작게 느껴질 때가 많았어요.

더군다나 처음 입사해서는 마케팅 쪽 일부터 시작해서 PM(Product Manager) 경력도 짧고, 어렸을 때부터 했던 게임들이 좀 마이너하다고 할까요. 대중성이 조금 떨어지는 게임들이 많았기 때문에, 제가 제시하는 의견이 대중들에게 얼마만큼 어필할 수 있을지 고민도 많이 돼요.

산업 특성상 정답이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지만, 사업 PM이라는 일은 정말 유저를 잘 이해해야 하는 위치라 내가 보는 시각이 대중적이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드니 확신이 안 들어서 더욱 조심스럽게 느껴지고, 말을 아끼게 되더라고요.

누구나 그런 때가 있죠. 특히 요즘엔 다들 더 그런 것 같고요.

저는 사실 그런 편이 아니었거든요. 여태껏 뭘 하든 대개 잘한다고 믿어왔어요. 적어도 부족함 없이 해왔다고 자부했고 그럴 수 있을 만큼 잘 헤쳐 왔다고 생각해요. 누구랑 비교해도 뭐가 딱히 떨어지거나 하는 것도 없었고 주위 분들도 모두 잘한다고만 격려해주셨거든요. 그래서 더욱 근래의 일들이 낯설게 느껴지곤 했어요.

아이슬란드 여행에서 찾고자 했던 것 중 하나도 자신감이었어요. 시행착오 겪어가면서, 개고생 하면서도 혼자서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가지고 싶었죠. 덕분에 귀국 후 의욕이 충만해졌달까요. 물론 아직도 회사에선 다시 문서 만들다 좌절하고 (웃음) 자책도 많이 하지만 그래도 여행 버프가 꽤 도움이 되었어요.

아름다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생각이에요. 행복하고 자신감에 차있을 때의 세상과 그렇지 않을 때의 세상은 전혀 다른 곳이에요. 아무리 아름다운 걸 봐도 저에게 확신이 없다면 그걸 과연 아름답다고 할 수 있는지도 헷갈리게 되죠. 아름다움을 결정하는 건 그걸 받아들이는 자신이잖아요. 스스로를 믿는 마음 없이는 아름다움도 없는 거겠죠.

아이슬란드 이야기를 더 들어보고 싶은데요. 그곳에서 느낀 아름다움에 대해서 말씀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가이드 한 분과 나눈 이야기가 인상 깊게 남아있어요. 제가 그분께 아이슬란드에서 태어나셨냐고 여쭤봤거든요. 그러자 그 분이 그렇다고 말씀하시면서 아이슬란드 자랑을 끊임없이 늘어놓으시는 거예요. 자신은 그곳에서 태어난 걸 굉장히 자랑스럽게 여기신다면서.

아이슬란드라고 하면 보통 굉장히 혹독하고 춥기만 한 곳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요. 막상 가보니까 화산도 있고 뜨거운 온천도 있고 다양한 매력을 가지고 있었죠. 가이드 해주시던 분은 그런 이야기를 하시면서 본인이 그곳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자기가 밟고 선 땅이 얼마나 근사한 곳인지 신이 나서 설명을 해주시더라고요.

그 모습을 보니까 자기가 가진 것들을 사랑하고 감사하면서 자랑스럽게 남들에게 소개한다는 게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지 새삼 깨닫게 되더라고요. 저는 과연 어떤지 돌아보게도 됐고요. 사실 아이슬란드가 전체적으로 도시가 잘 발달한 곳은 아니어서, 약간은 시골 느낌이 나기도 했거든요. 마을에 가도 소박해요. 화려한 시내가 형성된 것도 아니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인들의 생활 방식에 자신이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어요. 애써서 꾸미지 않아도 누구나 알아볼 수 있을 만큼 빛나는 뭔가를 가슴 속에 지니고 사는 거예요. 그런 게 진짜 자신감 아닐까 싶었어요.

그럼 여리 씨 본인은 어떠세요? 스스로 그런 자신감을 가지고 아름다웠던 때가 있었다면 언제인지 궁금해요.

정말 신이 나서 테니스를 칠 때요. 벌써 9년 된 취미인데요. 테니스를 계속 치다 보니까 이제는 스윙 한번을 할 때에도 나름의 철학이 묻어난다는 생각을 해요. 결국 마음의 문제인 것 같아요.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럴 텐데, 대회에 나가면 평소보다 못 치게 되거든요. 이기고 싶다는 욕심도 들고, 아무래도 점수가 달려있다 보니까 주저하게도 돼요. 잘 안 쳐질 땐 괜히 힘도 많이 들어가고 아껴 쳐야 한다는 생각에 다리도 더 굳어버리죠.

오히려 잘 될 때는 그냥 어깨 힘 빼고 한구씩 내 흐름대로 자신 있게 넘길 때예요. 그런 멘탈이라면 아마 쉽게 이기는 경기일 텐데, 괜히 얽매이는 게 많아지면 (예를 들면, 파트너랑 점수같은 거요) 조급해지고 자꾸 실수도 나오죠. 내 걸 못 치는 느낌이랄까. 그런 작은 생각 하나하나가 중요한 것 같아요.

자신감을 가지는 게 중요하다는 건 알고 있지만, 사실 쉽기만 한 건 아니잖아요. 여리 씨는 자신감을 가지기 위한 나름의 방법이 따로 있나요?

알고자 하는 마음가짐이 중요한 것 같아요. 뭐 하나라도 알려고 하면 작은 것까지 유심히 들여다보게 되잖아요. 그냥 스쳐 보내는 것 없이요. 게임을 할 때도 그냥 하는 게 아니라 이 게임은 어떤 점이 괜찮은지, 우리 게임에 넣어볼 만한 기능은 없는지 따져보려고 하고요. 그렇게 꼼꼼하게 점검하고 다져나가면 그게 다 자양분이 된다고 믿어요.

여러 생각들 중에서 하나를 선택할 때, 그 하나에 모두 걸 수 있을 정도의 깡도 필요하겠죠. 테니스를 치다 보면 한 포인트로 경기 흐름이 바뀌게 되는 순간들이 와요. 그때가 오면 고민을 하게 되죠. 이걸 세게 쳐서 승부를 볼 것인지, 안전하게 넘기고 다음 공을 노릴지, 아니면 아예 위로 넘겨 버릴지.

그런데 그 고민을 하다가 한번 타이밍을 놓치면 단 1초가 결과를 바꿔버려요. 그래서 어떤 결정을 내렸든 일단 내질렀으면 끝을 보아야 해요. 그리고 신기한 건 차라리 끝까지 스윙을 하면, 공에 스핀이 걸려서 들어갈 확률이 오히려 커지게 되요. 그러니까, 정말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이라면 확신을 가지고 질러보는 것. 일상에서도 그렇고, 테니스에서도 그렇고.

감사합니다. 대화 마무리 하면서 질문을 하나 더 드릴게요. 지금 이 순간 마지막 말을 해야 다면, 여리 씨는 어떤 말씀을 남기고 싶으신가요?

‘나는 오늘도 행복했다’고 얘기할 것 같아요. 저는 뒤는 잘 안보거든요. 후회하는 게 나 자신에게 제일 창피해요. 후회가 남았다는 건 하루하루 열심히,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거니까요. 물론 아쉬움은 남을 수 있죠. 그건 내일 더 잘하면 된다고 생각해요. 오늘까지의 나는 이게 최선이었으니까, 그 안에서 가장 행복하게 보낸 거죠.

bottom of page